남편이 있는 일상

by 지원

주말만 바라며 살아서 그런지 주말을 제대로 보내지 않고 낭비하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길고 길었던 추석 연휴는 그야말로 낭비하며 보냈다. 매일 아침 9시~10시까지 늦잠을 잤다. 연휴가 끝나가는 마지막 토요일에는 갑작스럽게 천안에 갔다. 연휴가 끝나기 전에 어디든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어딜 가야 할지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던 금요일 밤에, 마침 청모도 해야 하는데 누구도 만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다 보내버린 나를 탓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프사를 웨딩포토로 바꾸어 놓고, 우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에, 천안에 사는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이 와서였다.


이 친구를 만나는 건 5년 만인 듯했다. 가끔 친구의 생일이면 카톡을 보내 보긴 했었는데 이야기가 잘 이어지지는 않아서 점점 연락이 뜸해지던 참이었다. 작년에는 함께 알던 다른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오랜만에 연락을 해 보았지만 그때도 결국엔 만나지 못했던 친구였다. 그랬던 친구가, 내 웨딩사진을 보며 먼저 연락을 주고, 내 결혼식날 꼭 와주겠다고 하니 보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약속을 잡게 됐다. 내가 내일 천안으로 갈게! 하고. 금요일 밤에 급하게 남아있는 KTX를 예약했고, 우리는 서로의 남편을 동반해서 4명이 함께 토요일 점심을 하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천안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5년 만에 보는 친구는 어떨까.. 어떻게 지냈을까? 함께 점심식사 하는 분위기는 어떨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약간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친구 부부는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너무 예뻤고... (난 얼빠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뵀을 때 석사 준비 중(?)이셨던 남편분도 그동안 민음사에 책을 내는 멋진 박사과정생이 되어 있으셨다 ,,, 어쩐지 뻐렁치는 마음과 함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함께했다.


무엇보다 글을 쓴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남편과 내가 함께 극본을 쓰던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물론 재작년에 12부작이었나 줄거리 잡은 이후로는 완전 손을 떼고 있었지만..... 정말로 올해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 달에 내 자격증 시험이 끝나고;;; 올해가 다 끝나고 나면 다시 남편과 함께 작품을 쓰기 시작하려나? 남편이 이 일을 조금 귀찮아하는 줄 알았는데, 친구 부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작품 쓰는 것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조금 재밌었다. 그렇다면 나는 물론 좋지,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으니까...


핸드폰 용량이 가득 차서 요즘은 카톡을 열 때마다 경고 메시지가 뜬다. 미디어 데이터를 삭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첩을 열어 보면 늘 몽이 사진이 있다. 몽이는 지난 4월에 떠났다. 친구 부부도 하얀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자세한 건 듣지 못했지만 이제는 떠났다고 했다. 몽이가 떠나고 한동안 슬퍼하다가, 또 한창 바쁘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괜찮았다가, 또 이렇게 자꾸만 용량이 부족한 핸드폰 때문에 사진첩을 자꾸 열어보면 자꾸 몽이 사진이 보이고....... 거의 마지막쯤에는 몽이의 치매와 피부병으로 많이 고생했던 몽이와 우리 가족들은,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난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 월요일에는 정상인처럼 걸어가서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우울했다. 화요일부터는 몸이 너무나 피곤했다. 체력적으로 엄청나게 피곤했고, 곧 있을 행사를 준비해야 해서 스트레스와 부담감도 잔뜩 쌓였다. 겨우 일주일을 마치고 주말이 되었는데, 역시 나는 곧 있을 행사 때문에 주말에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해야 했다. 토요일에 점심을 먹고 출근을 했는데, 팀장이 있었고.... 그 뒤의 내 기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내가 하도 기분이 최악이 되어서 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내 기분을 쏟아내니 다들 힘들어하면서 그냥 일하지 말고 집에 가라고 했다. 날씨도 갑작스럽게 쌀쌀하고 추웠다. 지금까지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닐 날씨였지만 , 그날부터는 긴팔을 입어야 하는 날씨였다. 나는 일도, 다음 달에 있을 자격증 시험공부도, 그렇다고 남편과 함께 재밌게 놀기도 하지 못한 채로 패배자의 심정이 되어서 , 물론, 오랫동안, 글도 전혀 쓰지 못하고 책도 전혀 읽지 않은 채로..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는 남편이 새로 샀다는 닌텐도 추리 게임을 , 감자칩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자고 했고.... 너무 재밌게 놀았다.


그날 밤에는 남편이 또 청모를 하러 떠났고... 나는 혼자 집에서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역시 자격증 공부는 별로 하지 못했고, 저녁밥으로 먹을 진짬뽕을 하나 끓이면서 어쩐지 울적한 마음에 , 전에 보다가 너무 딥해져서 관두었던 은중과상연 10 화인가부터를 보기 시작했다. 진짬뽕을 잘 끓이긴 했지만 토요일 저녁에 혼자 먹고 있자니 맛도 그저 그렇게 느껴졌다. 나처럼 , 아무 힘도 없이 바닥에 누워서 천상연은 핸드폰을 열어 단축 번호에서 엄마의 번호를 삭제하고... 은중의 번호를 삭제한다... 그걸 보면서 슬프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러다가 침대에 누워 또 핸드폰을 보았는데 최근에 반려견을 잃은 사람이 챗GPT로 쓴, 강아지별에서 쓴 강아지의 일기를 올린 것을 보았다. 그걸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기는 너무 어려웠고......

울면서 마침 걸려온 남편의 전화를 받으니까 곧 남편이 왔다.


남편은 상큼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요맘때 딸기맛을 사 왔고, 차가운 맥주도 사 와서 함께 마셨다.

그리고 이럴 때는 순풍을 봐야 한다며 순풍을 보고 , 귀마개를 끼고 새벽에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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