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등학생 때는 종이만 있으면 만화를 그렸던 것 같아요. 한 장씩 그려 모으던 게 분량이 꽤 됐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이야기가 되든 말든 즉흥적으로 그려나갔는데, 스스로는 만족하면서 그걸 모았던 것 같아요. 중학생이 되던 때도 생활툰 그리듯이 평소 있었던 일들 중 재밌는 소재를 가지고 만화를 그리곤 했어요. 더 나이가 먹고서는 그림을 전혀 안 그리게 됐지만. 중학생 때 한 번은 소설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쯤에 판타지 소설 보는 걸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걸 써 보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진도 나가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이건 못 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쓸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대로 덮어진 채로 있다가, 대학생이 되고 시간이 많아지니까 또 소설이 써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도 많이 읽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쓰지? 역시 조금 쓰다가 더 이상은 쓸 수가 없었어요. 교양 글쓰기 시간에 짧은 소설 비슷한 것을 써낸 적이 있었는데, 쓰는 순간에는 즐거웠지만 제출한 과제의 점수가 좋지 않으니 그대로 시들해졌어요. 그러니까 창작에 대해서 아주 가끔, 마음은 있었지만 금방 시들해져서 행동으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던 날들이었어요.
2. 나의 일상에는 희망이나 절망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희망으로, 또 어떤 날은 절망으로. 희망을 쫓을 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초조해지고, 조급해졌다. 절망으로 채워지는 날에는 모든 걸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 종일 잠이나 자고 싶어졌다. 하지만 출근을 하고 일을 해야 했으므로 절망에 대한 반응으로 암울한 표정을 지으며 일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3. 느낌에 대해서 한창 쓰던 시절에 감정을 쓰면서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개운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다시 한번 진솔하게 내 감정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어느새 솔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두려워졌다는 걸 알았다. 내가 알게 되는 것도, 남들이 보게 되는 것도 두려웠다. 다 잊어버리고 평화로운 세계가 등장하는 게임 속에 빠져 있으면 아무런 고통 없이 하루가 갔다. 그렇게 휴일을 보내버리면 후폭풍은 다음날 출근하는 나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4. 요즘의 특별한 사건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너무 많이 결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축하해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해지고 아쉬웠다. 동지들이 떠나가 버리는 것 같은, 홀로 남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건 부러운 마음이기도 하고 자신이 뒤쳐지는 것 같다는 조급 함이기도 했다. 또 하나의 느낌은 그런 인생의 큰 이벤트를 준비하는 일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는데, 나였다면 과연 그렇게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 없는 느낌이었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종종 그런 느낌에 휩싸였다. 또 하객이, 친구가 너무 적으면 내가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조여 오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 숫자가 적은 건 사실이고 어쩔 수 없는걸? 내가 친구를 초라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따뜻하고 너그럽게 대해 줘야 하는데.
5. 출근은, 일에 대한 생각은 가끔 참을 수 없는 답답함과 공포로 다가왔다. 이것들을 다 해낼 수 있을까,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다 망해버리는 건 아닐까, 나중에 수습하느라 곤란해지는 건 아닐까, 나중에 감사를 받고 뭔가가 잘못돼서 징계를 받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 보면 숨이 막혔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내가 나를 달래주고 진정시켜 줘야 하는 때. 괜찮아, 잘리면 퇴사하니까 좋은 거지. 푹 쉬다가 다른 일 알아보자.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괜찮아. 나만 어려운 거 아니야, 내가 그리 못난 것도 아니야.
6. 일요일이 끝날 때쯤이면 다가오는 다음 주가 숨 막히게 답답하고 걱정되기 시작한다. 걱정되는 걸 알아줬으니 한번 더 달래주기. 막상 출근하면 별 거 아닐 거야. 하루가 어떻게든 흘러갈 거야. 같이 일하는 분들이랑 소소하게 재밌는 일들도 있을 거야. 재미없어도 괜찮아. 돈을 버는 거니까. 돈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자. 그리고 나는 하고 싶은 창작을 하자.
7. 그러니까 내가 왜 갑자기 창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됐는지, 그 계기는 잘 모르겠다. 직장에 자리 잡은 뒤로, 내게 좋은 시절은 이제 다 끝나버린 것 같다는 절망이나 무망감 같은 것들만 남아있었다. 더 이상 어떤 성취할 목표나 꿈이나 설렘이나 순수함이나 경이로움이나 충만함이 없었다. 그런 없음으로부터 내게 희망을 줄 한 가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 대한 위로가 되고, 해소가 되고, 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의미가 되고, 나의 자산이나 자식이나 유산이 되고, 또 새로운 도전과 목표와 꿈이 될 것이다.
8. 퇴근을 일찍 했다. 조퇴를 하고 나왔다. 퇴근 후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버릴까? 회사 밖의 오후는 평화롭고 여유롭다. 이 해방감이 너무 좋아서 조퇴를 더 자주 하고 싶어 진다. 내 연가는 있지만 눈치가 보인다. 내키는 대로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릴 것 같다. 그런 해방감도 오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것도 회사에 묶인 몸이어야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
9. 아직도 어색하다. 부자연스러운 느낌과 부적절한 느낌은 아직 자리잡지 못한 것들에서 나온다. 편안하게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언제고 처음처럼 우물쭈물하며 쓸 수밖에 없을까? 일단 그냥 써보는 수밖에...
10. 머리가 아프다. 예전에도 원래 아팠는지 최근 들어 아픈 건지 잘 모르겠다. 머리가 무겁고 숨이 막히는 것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감각이다. 머리도 아픈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게 은근히 아파 온다. 내 머리에게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자꾸만 잊어버리고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그런 것이 두렵고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