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씩만 살기

버거울 때, 오늘만 살기

by 지원

1. 부쩍 쌀쌀해진 날씨가 멍하던 정신을 깨운다. 예전 일기를 읽어보니 그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게 대단해 보인다.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휴학을 해서 여유가 생겼지만, 일터에서는 1인분을 추가로 떠맡게 되어 일이 늘었다. 아니.. 1.5인분인가.. 점점 나에게 떠넘겨져 오는 일이 많아지는데, 전체 인력이 줄어서 다른 사람이 맡기에도 애매한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부담스럽고 앞으로 더 일이 많아질까 봐 걱정된다.

2. 다시 학교에 돌아가는 게 두렵다. 첫 학기는 멋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에 용감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주변에서도 협조적인 편이었다. 물론 본업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몸이 자주 아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낸 자신이 뿌듯하고 대견했다.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았다는 충족감이 든다. 물론 당시에는 매일이 너무 힘들었을 테지만..

3. 가만히 비어있는 공백의 시간에는 자꾸만 써야겠다는 초조한 마음,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발걸음이 턱턱 멈추어 버리고 만다. 자꾸 도망가고 싶어 진다. 하지만 달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라면 빨리 가고 싶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더 젊고 건강할 때. 오직 지금. 오직 지금뿐이라고

4. 뭘 써야 하는지는 항상 고민이다. 나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것에 시간 쓰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하지만 쓰는 것은 무엇이든 어떻게라도 의미가 없을 수가 없다. 그렇게 믿고, 그래서 그렇게 계속 써야지.

5. 어제는 아침부터 종일 일을 했다. 토요일이었지만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동료들이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오후 시간까지 일을 했다. 지겨워서 당장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 하루만 힘들고 끝내버리자 하는 생각으로 참고 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다 끝낸 것은 아니었다. 나머지는 출근하면 그다음에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쉬면서도 끝나지 않은 일들이 찝찝하게 남아서 질척거렸다. 결국은 내일 아침 일찍 나가서 일을 하기로 다짐한다... 내일의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협조 좀 구해볼게... 대신에 맛있는 커피 사줄게. 병원에서 커피 마셔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5. 가을이 후드득 지나가고 있다. 맑은 공기, 깨끗한 하늘, 투명한 바람, 따사로운 햇볕. 일 년 중 몇 안 되는 좋은 날씨는 대부분 시험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졸업을 했으니까, (아니다, 결국 또 입학을 했고 휴학 중이지...) 좋은 날씨를 얼마든지 만끽할 수 있지만 나는 여전히 핑계를 대고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나의 즐거움일 수도 있겠다. 책상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그것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좋은 날씨와 여유를 음미해 본다.

6. 스터디 카페에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근처의 북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유명하지만 읽어본 적 없었던 연애소설을 읽어보았다. 천천히 4시간 동안 꼼짝을 않고 앉아서 소설에 빠져들었다. 쓸쓸하고 아릿하면서 설레는 감정이 뭔지 너무 잘 알겠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 싸매가며 읽었다.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어느 한때를 추억하면서.

7.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일터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만 편안해도 거의 충분할 텐데.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는 치열하게, 그 치열함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오직 지금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겠어서, 아까도 쓴 말이지만, 마음이 조급하다.

8. 종종 유튜브 타로를 찾아본다. 연애운도 인기 많은 주제인 것 같지만, 요즘은 그런 주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 일로 너무 바빠서, 별 기대가 없어서, 누굴 만날 시간이 없어서.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몇 달 전 입사한 신입 언니와 업무 때문에 몇 번 정도 단둘이 밥을 먹었다. 언니의 분위기가 편안하고, 나를 많이 칭찬해 주기도 하고, 또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질문들을 많이 던져 줘서 좋다. 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의 특징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질문들이 있을 때 생각보다 나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게 된다. 어쩌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지만.

9. 재능이나 진로, 적성에 대한 타로를 요즘은 자주 찾아보았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내용이 나오면 안 맞네. 하고 넘겨버린다. 내가 원하는 내용이 나오면 혼자서 감격하고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맘에 드는 내용들은 이런 것들이다. 내게는 재능이 있고, 정말 멋진 결과물을 이루어낼 것이고, 돈도 많이 벌게 될 것이며, 주변 사람과 상황들이 다 나를 도와줄 것이니, 당장 시작하라고. 정말 열심히 해보라고. 그러면 나는 다시 한 줄이라도 더 써 보자 하고 손을 움직인다.

10. 더디고 싶지 않다. 빠르고 싶다. 빨리 이루고 성취하고 싶다. 너무 조급한 걸까? 그 열기로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조금이라고 써 주기를. 잠깐이라도 써 주기를.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 주기를, 발을 떼지 못한 날이 있더라도 목표에 대한 생각만은 멈추지 말아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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