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상

시행착오와 함께 살기

by 지원

1. 갑자기 겨울이 됐다. 아찔하다. 지겹도록 길고 긴 추위의 시작이다. 겨울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시리게 맑은 공기, 차가운 바람이 상쾌하게 정신을 깨우는 감각, 한 해가 끝나고 시작되는 분위기의 설렘, 따스함과 포근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점은 좋다. 마음마저 녹여내는 온기를 이토록 절절하고 반갑게 맞을 수 있는 계절은 겨울뿐일 것이다.

2. 일요일의 감정은 쓸쓸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요일은 보통 쓸쓸한 느낌이 든다. 출근에 대한 부담, 지나가버린 주말에 대한 아쉬움. 얼마 남지 않은 주말의 빈칸에서 고요히 있다 보면, 내가 지금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 슬며시 점검하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나, 더 좋은 뭔가를 하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은 아닌가.

3. 이번 달에 단편 하나를 마무리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 계획된 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차 조급해지고, 자신감과 기대치가 뚝뚝 떨어져 갔다. 우선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자, 완결을 내자. 하는 마음으로 드디어 초고를 마쳤다. 여기저기 허술한 곳 투성이지만, 초고를 마치긴 마쳤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오후에 한 번만 더 손보고 묵혀 두어야지. 그다음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해 두었다. 막상 쓰려고 하면 그걸 과연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스럽지만, 꼭 쓰고 싶고 지금 꼭 써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오직 지금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늦어지지 않게, 놓치지 않게, 지금 당장 써야 한다.

4. 부끄럽게도 나는 쓰고만 싶어 할 뿐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다. 첫 학기를 다닐 때는 그 부분이 창피했다.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특히 시에 관해서는 뭐가 좋고 나쁜 건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수업 때문에 여러 권의 시집을 읽게 되었음에도 한 학기를 마칠 때까지 마음에 와닿거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 거의 없었다.. 시에게 미안하게도.. 음악에 문외한이라 낯설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클래식, 국악, 어느 먼 나라의 민속 음악, 그런 것들처럼.

5. 그래도 계속 학교를 다니려면 시를 피해 갈 수는 없다. 게다가 분명 시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 시를 좀 더 알고 싶다. 시작법서와 시인들의 에세이를 몇 권 샀다. 시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달라서 일상의 언어로는 시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시를 어떻게 감각해야 하는지, 시에 어떻게 익숙해져야 하는지, 시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조금씩 친밀해져 봐야지.

6. 계절이 조금만 바뀌어도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는다. 작년 이맘때 뭘 입고 다녔는지 매번 의문스럽다는 것도 놀랍다. 옷장을 보면 옷들이 있긴 있는데, 다 어딘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지못해 입고 나가면 기분이 산뜻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새 옷을 찾아서 사려면 그 과정이 귀찮고 돈도 아깝다. 그래서 결국은 마지못해 골라 입은 옷들을 입고 마지못해 밖으로 나가게 된다. 어쩌면 집 밖에 나가기가 싫어서 옷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7. 도와달라는 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누구에게 부탁하느니 차라리 내가 감수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힘에 부쳐서 다치거나 화가 날 때도 있다. 무거운 것들을 혼자 나르다가 손목을 다치거나, 무릎을 찧거나, 박스가 옷에 쓸려서 옷이 다 더러워지기도 한다. 혼자서 해결하려다 보니 일들이 많이 밀려서 주말에 출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렇다 보니 주변에서 먼저 와서 도와주시려는 분들이 있다. 자꾸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나한테 말하고 같이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도와드릴까요? 하며 먼저 찾아오거나, 내가 할 테니까 가라, 하면서 쫓아내려고 하시는 분도 있다. 바쁘잖아요, 가서 할 일 해요. 그렇게 말씀해주신다. 필요하면 불러, 도와줄게. 먼저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8. 그래서 가끔은, 나는 여길 영영 떠날 수 없겠구나. 문득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까마득히 지겨운 일.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출근. 출근하기 싫어서 주말에도 평일에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마음이 무거워지곤 하다가도. 다 그만두고 훌쩍 떠나서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아 보고 싶다가도. 내가 어딜 가서 이만큼의 보수, 업무강도, 근무환경보다 나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더 좋은 곳, 나에게 더 잘 맞는 곳,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형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9. 작년 4월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아주 오랜 시행착오 기간인 것 같다. 이곳에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할지는 아직도 고민이 많다. 문제는 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고 슬쩍슬쩍 붓에 물만 묻히다가 끝나버리는 것 같다는 점이다. 결국은 그냥 편하게 일기인지 느낌노트인지 뭔지 모를 것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치 보지 않고 더 진솔한 내면을 터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10. 일요일에 업로드하는 것으로 암묵적 규칙이 생겼다. 다음 주를 위해 비축분을 쓰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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