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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09. 2021

근황

쉬는 날 오전의 자유연상과- 오후에는 시를 써야지.

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이다. 스터디 카페에 나왔다. 동네에는 어느새 스터디 카페가 많이 생겨서 커피 파는 카페 수와 스터디 카페 수가 비슷해진다. 그중 가장 잘 되는 곳은 관리자들이 관리를 잘하는 티가 난다. 겨울이 되니 차가운 물만 나오던 세면대에서 온수가 나오게 되었고, 대용량 가습기가 등장해 수증기를 뿜어 낸다. 소소한 것까지 다 피드백해주고 신경 써 주는 게 다 보인다. 그건 어쩌면 정성만 있어서 되는 건 아니고 센스도 필요한 것 같아서 나는 약간 슬퍼진다. 명확한 이해나 논리도 포착할 새 없이 슬픔은 그렇게 순식간에 찾아든다. 나는 타자 소리를 asmr로 들으면서 타자를 치고 있다. 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이니까, 어떡할까, 사실 별 계획이 없었는데, 시를 써야겠다, 정도가 계획이었다. 오전은 집에서 보낼까 생각했는데, 집이란 곳은 새로움을 얻기에는 너무 닳아버려서, 다른 공간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스터디 카페에 와서 딸기가 그려진 홍차 티백을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신다. 커피를 줄여야지. 가만 생각하니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가 오래되어 한 편정도 써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브런치를 까맣게 잊게 한 것은 소설 응모였다. 






언제부터 글을 써서 응모란 걸 하기 시작했을까? 작년 여름부터였던 것 같다. 작은 공모전이었고, 돈을 준다고 하니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족스러운 글을 써서 보냈고 대상을 탔다.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과정과, 내 이름이 적힌 결과 창을 확인하던 날 아침과, 연락을 받고 시상식에 가기까지의 날들도 행복했다. 시상식에서 빨간 장미 꽃다발과 상장을 받았을 때는 약간 긴장했지만, 꽃다발을 안고 집에 와서 찍은 사진은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다. 내가 정말 기쁠 때는 그렇게 밝게 웃는구나. 다른 사진들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표정. 속에서부터 흐뭇한 기쁨이 멈추지 않을 때 지어지는 표정. 그 이후로 틈틈이 몇몇 공모전에 글을 보내 봤지만 작은 수상 하나가 있었을 뿐 더 이상의 소식은 없었다.






올해 처음으로 3달간 문예창작을 배워 보면서 많이 읽고 써 보게 되었다. 내 글이 구리다는 것도 살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얼마든지 취미로는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취미를 어디까지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얼마만큼 진심일까? 얼마나 노력할 의향이 있고, 어디까지 도달하고 싶은 걸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할 의향이 있나? 뭔가를 포기하면서까지 여기에 전념하고 싶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 애타게 찾았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고 은근히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알게 된다면 좋겠다. 그런 존재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들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큰 의지가 될 것 같았다. 

 내가 만족스러울만한 글을 쓰려면 더 많이 읽어야 할 것이고 더 많이 써야 할 것이고 그런 시간을 내려면 나의 평일 저녁과 주말 대부분의 시간을 열심히 바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또 무턱대고 전념한다고만 되는 게 아니겠지. 삶을 영위하고 풍요롭게 하고, 내 정신과 마음을 다채롭게 채워줄 경험들도 필요하겠지.

 한편으로 나는 그저 인정 욕구에 목마른 사람일 뿐이어서, 작은 칭찬의 기억들로 글을 부여잡고 있는지 모른다. 내 글을 좋다 해 주었던 사람들, 그런 기억들을 두고두고 되새기면서. 첫 소설 합평, 첫 동화 합평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나는 그 세계로부터 환대받고 초대받고 평생 함께하자는 청혼을 들은 것만 같았으니까. 그 순간의 반짝이는 에너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적고, 그렇다면 나머지는 다 글로 써야 할 테니까. 글과 나는 평생을 함께할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첫 학기를 마치고 쉬는 동안 나는 빨리 두 번째 단편을 써 보고 싶었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겨우 완성을 시켰다. 완성을 할 무렵에는 세 번째 단편의 줄거리를 생각했다. 나는 20대의 마지막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20대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한 달 반 정도를 쓰면서 나의 20대 한 구석을 돌아보았다. 설레고 두렵고 더없이 하나뿐인 것이라 평생에 다시는 없을 지나가버린 어떤 것들에 대해서. 이번에도 역시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완성하고 끝냈다는 것이 후련하다. 12월이 되어 이 단편을 완성하면서 정말로 나의 20대의 끝을 갈무리하는 느낌이 든다.

 작년 멋모르고 신춘문예에 응모를 해 본 이후 아직은 내가 뭔가를 해 볼 역량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고 있었다. 작은 공모들에는 툭툭 응모를 해 보되 아직 신춘문예에 응모해 볼 생각은 없었는데. 마침 마무리하게 된 시기가 십이월 초이다 보니, 떨어지더라도 한 번쯤... 아쉬움 남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조금 급한 감은 있지만 서둘러 완성을 시켜버리고 출력을 해서 보내버렸다. 어떤 응답도 없이 지나가버릴..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후련하다. 수런거리고 울렁거리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러니까 이제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좀 더 책을 읽고 좀 더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회나 아쉬움이 남지 않을 것 같다. 응모를 하고 나면 으레 그렇듯이 혹시라도 내가 당선이 된다면 하는 생각과 함께 수상소감을 생각하고 있는다거나 내 사진을 골라보게 된다. 사진첩을 보니 생각보다 쓸만한 사진이... 단 하나도 없었다. 평소에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꾸미고 다니지도 않고, 좋은 곳을 다니지도 않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갑자기 그런 게 아쉬웠다. 나중에 돌아보면 참 젊고 예뻤을 나이일 텐데 사진이 이렇게나 없어서야.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남들에게 내 사진을 부탁해야지. 얼굴을 많이 찍혀 놔야지, 싶었다. 그리고 나도 주변 사람들의 순간들을 많이 찍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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