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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Nov 30. 2021

여러 번 멈추었다가 더 여러 번 시작하기

그리고 좀 더 가볍게.

토요일 오전이 끝났다. 토요일 오후가 남아 있다. 이번 달과 저번 달은 여유로운 주말을 즐길 수 있었다. 주말에도 쉴 수 없었던 지난 1~2년을 떠올려 보면 감사하고 축복 가득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비로소 글을 써야지, 주말에는 글을 쓸 수 있다, 생각했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그 부담감에 짓눌리게 된다. 급기야 머리가 아프고 더 이상 뭘 써야 할지 막막하고...


*


결국 그 상태에 멈춘 채 주말을 다 보내버리고 말았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지면서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자꾸만 쓰지 못하고 쓰지 않고 갈증은 더 커져만 간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목매고 있나 생각한다. 부질없고 의미 없는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도 문득 부러움을 느끼고 질투심을 느끼는 순간을 돌아보면 나는 써야 할 것 같다.


*


쓰기를 생각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미루게 되는 평일과 그만큼의 부담이 쌓여 무겁게 짓누르는 주말이 있다. 평일에는 항상 주말만 생각하고 사는데 주말은 생각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쓸 수 있을까 온전히 자유롭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다른 것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유롭게 연마하는 시간이구나. 그저 자유롭게 맘껏 쓰고 표현해야지. 자꾸만 도망치고 그래서 좌절하는 시간들로부터.


*


지난 글을 쓰고 저장을 해 둔지 2주일이 되어 간다. 마음먹은 것을 꾸준히 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는 게 답답해지고, 자꾸 미루면서 욕심만 부리는 자신이 실망스러워진다. 작년에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게 되면서부터 항상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해왔다. 이런 오갈 데 없는 심정들,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고민들을 줄줄이 읊어 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 무슨 생각 하면서 사는지 또 하나의 일기장으로 쓰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쓰는 것도 힘들지만 쓰지 않고 허비하는 시간도 힘들어서 결국 써야겠다는 결심만 반복하는 상태라고, 남겨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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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온다. 날도 추운데 비까지 오니까 밖에 나갈 자신이 없다. 다행히 오늘은 연가를 썼다. 연가를 쓴 날에는 날씨가 맑아도 좋고-놀러 가기 좋으니까-, 비가 와도 좋다-빗길에 출퇴근 안 해도 되니까-. 어둑한 방에 앉아 겨우 노트북을 켰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 백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어떤 주기에 따라 커지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한다(사라지지는 않는다).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직장에서 쓴 맛을 제대로 보고 나온 나는 현재 직장인 두 번째 직장이 꽤 만족스러웠다. 첫 직장에 비하면 사회적 인식이나 안정성이나 업무 강도나 근무 환경이나 동료까지 모든 부분에서 최상급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만족도 잠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휴일 중 절반은 반납해야 했고, 퇴사 욕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곳이 아니면 어떤 직장도 이만큼 만족스러운 조건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프리랜서가 된다면? 언뜻 자유로워 보이는 그 이름이 유혹적이긴 했지만, 나처럼 게으른 인간은, 나를 잡아끌어주는 강제성 없이는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든 인간에게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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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를 사랑하지만, 자유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는 왜 그렇게 힘들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유를 반납해야 할 것 같다. 다음 학기에는 복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복학에 대한 두려움 중에서 큰 것 하나는 건강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올해 상반기 첫 학기를 보내면서 응급실만 여러 번을 실려갔고 진단서까지 끊어 가며 병가를 잔뜩 써야 했다. 그러고도 동료들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 없으니 밤새 토하던 몸으로 기어가다시피 출근을 하고, 사무실 책상 위에 엎어져 있거나 화장실에서 쓰러져 구급차를 부르거나 하면서 또다시 병가를 썼다. 결국 이번 학기는 휴학을 하고, 운동을 다니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어느 정도 다시 건강을 회복한 것 같다. 어제는 허리가 너무 아팠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멀쩡해졌다. 이런 회복력이 주어진 젊음의 시간이 너무나 고맙다. 자고 일어나면 아픈 곳이 낫는 것, 얼마나 축복인가... 그래서 이런 젊음과 건강이 남아 있을 때, 꼭 마쳐야 하는 일들을 하고 싶다. 


*


하지만 꼭 마쳐야 하는 일이 어디에 있지?

그런 의문이 들 때는 허무함에 빠져버리게 된다. 답이 없는 질문을 하는 것. 왜 써야 하지? 왜 해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엄청나게 멋진 결과물을 보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왜 그렇게 힘들어야 하지? 나는 보장받고 싶었다. 이렇게 노력을 하면 훌륭한 성취가 있으리라는 보장을, 그게 있어야 노력을 투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주나 타로 같은 것들에 그리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당연히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들에는 그런 질문들이 필요 없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될까요 안 될까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는 여러 가지 고민들이 필요 없다.. 잡생각 없이 그냥 몰입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안될 것 같으니까, 노력하지 않고 몰입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누군가 나의 결과물을 예언해줄 수 있다면,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면 나는 행동할까?

예를 들어.. 제가 졸업할 수 있을까요? 졸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제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묻는다면. 졸업 안 해도 되지. 졸업한다면 좋긴 좋겠지. 글을 안 써도 되지. 하지만 쓴다면 그건 만족스럽겠지. 안 쓴다면 나중에 후회하겠지. 더 나이가 든다면, 그때는 좀 후회되겠지. 결국은 지금 한다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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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가 심각한 편이라는 걸 떠올린다. 조금만 덜 심각하게, 조금만 덜 진지하게, 좀 더 편하게, 좀 더 가볍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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