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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Apr 03. 2022

나의 어떤 기록들과 브이로그

어느 일상을, 삶을 담아내는 것들

 벚꽃이 만개했다. 날씨가 좋다. 동생과 함께 스타벅스에 왔다. 카페에서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쓸 생각이었다. 기프티콘 금액에 맞추어 메뉴를 주문해야 했다. 두 명이서 해결하기에는 조금 큰 금액이었다(차라리 쿠키 같은, 포장되어 있는 먹거릴 더 살 걸).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와 그란데 사이즈의 음료를 두 잔 주문했다. 동생은 갖가지 옵션을 추가한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나는 신 메뉴로 나온 미드나잇 베르가뭇 콜드 브루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음료를 받아 드는 순간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비주얼에 압도되었다. 에스프레소 휘핑이 올라간 초록 초록한 동생의 음료와 영롱한 보라색의 층 위에 콜드 브루가 둥둥 떠 있는 나의 음료가 큼직한 그란데 사이즈의 잔에 담긴 채 달그락거렸다. 블루베리 맛이 난다는 이야기만 얼핏 들었는데 마셔 보니 블루베리 잼을 그대로 들이키는 것 같았다. 빨대로 열심히 저어서 섞어 봤지만 지독한 단맛은 가시질 않았다. 너무 달아서 쇼크가 올 것 같았다. 남기기가 아까워서 홀짝홀짝 조금씩 열심히 마셨고, 어느덧 벌써 절반 정도를 마셨다.


 토요일은 유튜브 편집을 해서 업로드하는 날이다. 나는 토요일에 몰아서 한꺼번에 편집을 한다. 내 일상은 단조롭고 별 일이 없는 편이라서 브이로그의 분량도 짧은 편이다. 나의 일주일을 담은 브이로그는 길어야 10분이 넘고, 짧을 때는 7분 정도로 끝난다. 처음에는 편집을 하는 데 한나절이 다 걸렸는데, 이제는 반나절이면 가능한 것 같다.


 일주일을 천천히 돌아보며 편집을 하는데, 내가 그때 뭘 하는 중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나는 도대체 그날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가? 알아내기 위해 나는 나의 각종 기록들을 뒤져 본다. 내 블로그나 트위터, 보낸 메일함에서 그날 나의 기록을 확인한다.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면 그날 내가 읽은 책이 뭐였는지가 나온다. 그런 것들을 뒤져서 내가 뭘 했는지를 알아내고 브이로그에 자막으로 기록한다. 그러면 일주일을 흘려버리지 않고 정리할 수 있다. 한 번 써버린 내 시간들을 그대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주워서 재활용하는 기분이 든다. 내 삶을 음미하면서, 한번 더 살아보는 기분을 느낀다.

 

 브이로그를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 남의 브이로그 구경에 빠지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할 때도 가끔 스터디윗미같은 영상을 보면서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상으로 기록하다 보면 타인의 시선, 렌즈의 시선을 통해 일상을 조금쯤은 허투루 쓰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시선이 있는 도서관이나 카페 같은 곳에 가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딴짓보다는 공부에 집중하게 되듯이...


 취업을 하고 나서는 직장인 브이로그를 찾아보게 됐다. 직장 생활이 너무 싫은데 남들은 도대체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는지, 브이로그를 보면서 출근하기 싫은 마음을 다잡아 보려 하기도 했다. 내가 즐겨 보는 브이로그들은 주로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의 영상이었다. 비슷한 업종의 직장인, 대학원생 브이로그들. 그 브이로거들이 퇴사를 하거나 프리랜서가 되면 무척 씁쓸해졌다.


 브이로그들을 즐겨 보면서 나의 브이로그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이런저런 핑계들로 브이로그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카메라도 없고(그땐 핸드폰으로 촬영해도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핸드폰으로 촬영을 한다면 용량 때문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고... 거치대 같은 장비들도 필요할 텐데, 그런 사소한 것들을 구입하는 게 돈 낭비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브이로그를 찍으면 내 주변 환경이 노출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가족과 함께 사는 집안의 장면이 무척 어수선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런 다양한 문제들 때문에 브이로그 촬영은 내 마음속의 작은 불씨로만 남아있었다.


 브이로그를 시작할 마음이 든 것은 내 환경이 바뀌면서부터였다. 갑자기 시간이 주어졌고, 일상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브이로그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나는 웹소설 작가들의 브이로그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웹소설 작가들도 비슷한 이유에서인지 브이로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단 시작하려고 마음먹자 지금까지 생각했던 모든 문제들은 브이로그를 시작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편집 프로그램은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카메라는 필요 없었고, 핸드폰으로 충분했다. 심지어 핸드폰 거치대도 사지 않았다. 핸드폰 뒤에 붙어 있는 그립톡만 세워서 사용해도 충분했다. 작은 상자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약간의 높이감을 주거나, 탁상거울에 핸드폰을 고정시켜 놓고 사용할 수도 있었다. 완벽한 구도가 나오지 않아도, 화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완벽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고,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하는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노출될 것에 대한 불안이 있는 내게는 구독자가 적고 조회수가 적은 편이 더 나았다. 일부러 배경음악을 깔지도 않았다. 배경음악을 찾아서 삽입하거나 다채로운 편집 효과를 주는 것은 주객전도가 될 것 같았다. 브이로그는 내게 일상을 정돈하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되지는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집안, 날것 그대로의 소품이나 실내복 같은 것도 생각보다 문제 되지 않았다. 더럽고 안 예쁜 것들은 찍지 않으면 그만이고 편집하면 그만이고 가려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만의 입맛대로 편집하는 건 내 일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 통제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브이로그 편집을 하는 날은 내게 가장 기다려지는 휴식 시간이 되었다. 취미로 브이로그를 한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듯 주절주절 자막을 다는 일이 재미있었다. 내 마음대로 내 일상을 편집하는 통제감, 내가 일주일을 그럭저럭 효용 있게 꾸려 갔다는 느낌, 보람, 뿌듯함을 다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내 일상을 돌아볼 귀중한 기록이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좋다. 아마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브이로그가 지금처럼 유행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분명 브이로그를 찍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브이로그로 기록을 남겨 두었더라면.... 정말 좋았겠지. 영상으로 그 순간을 돌아보면서 추억에 잠길 수 있었을 테니까. 아쉽게도 나는 대학 시절을 동영상으로 남겨둔 것이 거의 없다. 사진 기록도 적은 편이다. 그건 정말 아쉽다..


 최종 학교를 졸업한 지는 만으로 4년이 되었다(겨우 그것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나는 6년 동안 그 캠퍼스 안에서 살았다. 그곳은 나의 작고도 큰 세계였다. 종종 그 시절의 어느 장면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나만 그런 걸까? 다른 사람들도 그런 증상을 경험할까? 일상생활을 하다가, 멍을 때릴 때, 밥을 먹다가, 갑자기 그 시절의 장소가, 눈앞에 나타난다. 아주 짧은 순간, 갑자기 누군가 내 눈앞에 사진을 들이밀었다가 치우듯이 예고도 없이 흔적도 없이 그 장면이 내 눈앞을 스쳐간다. 그럴 때면 나는 그 갑작스러움에 당황하고, 아득한 그리움에 잠긴다. 그 장면은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금방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잊힌다. 하지만 그리운 시절의 꿈을 꾸듯 깨어나고 싶지 않고, 자꾸만 더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나는 이런 증상에 대해서 시든 소설이든 쓰고 싶어 진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나의 삶에 대해 기록할 수 있다는 게 좋다.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하다. 각각의 방식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나의 삶을 보여준다. 어떤 기록이든 온전한 체험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생생하게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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