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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r 27. 2022

심리학을 지나 소설 쓰기로

내 인생의 이야기 쓰기


 일요일 오후 2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날씨가 맑고 화창하다. 기온이 제법 올라서 따뜻하다. 오늘도 역시 스터디 카페에 나와서 앉은 채로 오늘의 글쓰기를 시작해 본다. 일요일은 일주일에 한 번 브런치 글을 써서 올리기로 한 날이다.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무계획으로 살다 보니 글감 역시 준비된 것이 없다.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일기를 쓰는 느낌이랄까... 물론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처럼 멋진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멋진 글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쓰는 것,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 뭐라도 완성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최대한 부담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깨끗하고 하얀 화면 앞에 앉아 있다.


 생각해 보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수없이 이런저런 글을 쓰며 살아왔지만 막상 제대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고등학생 때까지도 분명 '쓰기'가 국어 교과목에 포함되어 있었고, 대학교 1학년 필수 교양인 글쓰기 수업도 들었으니 글쓰기를 분명 배운 것은 맞다. 하지만 글쓰기를 배운 것이 기억에 남지 않는 이유는 글쓰기를 '주'보다는 '부'로 봐 왔기 때문이었을까. 직접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글쓰기를 이론적, 피상적, 형식적으로만 배워 왔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부터 시 쓰기와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갖고 교육을 찾아 듣고 있다. 글을 쓸 때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팁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일단 써야 하는 분량보다 넘치게 많이 쓴 다음에, 필요 없는 내용들을 삭제하고 남아 있는 내용들로 그럴싸하게 조직화하여 다듬는 것. 별 것 아닌 방법인 것 같지만 지금까지의 내 글쓰기 방식이 원시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눈이 번뜩 뜨이는 방법이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분량을 채울 만큼만 글을 쓴 뒤에 고작 맞춤법이나 고치고 끝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 왔던 습성을 생각하면 내가 글을 잘 쓴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어쩐지 나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갖지 않은 채 살아왔다. 간혹 가다가 내 글에 대해 주어지는 피드백은 '못쓴다'가 아닌 '잘 쓴다'였으니까, 그리고 그건 아마 글쓰기가 중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었겠지? 최근에 자신감의 곡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무지의 순간일 때 자신감이 가장 높았다가 조금 알게 되는 순간에는 자신감이 가장 낮게 떨어지고, 이후로 지식/능력이 쌓일수록 점차 자신감도 점점 높아진다는 곡선이었다. 그것처럼 글쓰기에 대한 부담 없고 근거 없는 내 자신감도 다 무지에서 오는 것이었겠지.


 하지만 무지하면 뭐 어떤가, 글쓰기를 즐기고 글쓰기에 흥미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중요하다. 나는 남들이 보면 심심해서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로 객관적 노잼 인간이다. 별 재밌는 것 없이 그냥저냥 사는 것이다. 마치 김치랑 김이랑 밥만 가지고 하루 세끼 먹으면서 살듯이. 그런 삶은 얼마나 심심하고 또 그렇게 보내버린 삶은 얼마나 아까운가. 삶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당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좋아하려면 일단 경험해봐야 하고, 또 뭔가에 대해 알고 이해해야 한다.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앎과 이해를 늘리고 싶고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 현실은 귀찮은 게 너무 많아서 주로 방구석에 앉아 죽치고 있는 것을 선호하지만... 어쨌든 내 좁은 세상을 넓혀 줄 새로운 발견은 가뭄 끝에 쏟아붓는 빗줄기처럼 시원하고 반가운 것이다.


 서른이 다 되어서야 나는 글쓰기에 진심이 되기 시작한다. 정작 학생 때는 오랫동안 내게 심리학만이 배움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틈에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간절해진 것인지 아직도 의아해진다. 드러나지 않은 여러 가지 욕망들이 있었겠지, 개중엔 어그러진 욕망도 있을 것이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이것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소설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소설 속 인물에 대해서 웬만한 심리학 전공자만큼 꼼꼼히 사례개념화한다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란 적이 있다. 소설이든 시든, 그것을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가 되라고, 더욱 나 자신이 되라고들 말한다. 그건 어쩌면 내가 심리학을 전공하도록 이끌었던,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좋아했던 메시지이고. 그럴 때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이 하나의 큰 이야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게 된다. 그랬으면 좋겠다. 당장 내가 쓰고 있는 것들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도, 넘치도록 쓰고, 그것들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내 인생에 대한 하나의 큰 이야기,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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