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원 Mar 20. 2022

스터디 카페 좋아하는 사람

나의 통제 욕구에 대하여

 스터디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생겨난 스터디카페가 이제는 흔해졌다. 집에서 10분 이내의 거리에만 3곳의 스터디 카페가 생겼다. 카페와 독서실 사이 어디쯤의 위치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나만의 공간을 제공해 주는 곳, 쾌적하고 산뜻하게 집중할 수 있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기분까지 가볍게 해 주는 곳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점이 있다면 세상이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해 간다는 점. 계속해서 더 좋은 기술이나 문화가 생겨난다는 것. 더 편안하고 더 다양하고 더 마음에 드는 더 좋은 것들이 풍부해진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편리함이 생겨나고, 이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로움이 허락된다. 세상이 그런 방향으로 조금씩 발전해 간다는 게 좋다. 아마 훌쩍 나이를 먹은 미래에는 지금 나도 몰랐지만 불편했던 점들, 내가 불편했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고 참아야 하는 일이며 누구든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너만 유난이구나, 하는 일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는 더 좋은 날들이 오겠지.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의 전환과 노력과 인식의 개선과... 그런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다시 스터디 카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나는 지금 노란 조명이 안락한 스터디 카페에 와 있다. 커피 머신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려 마셨다. 스터디 카페에는 사물함이 있어서 무거운 짐을 굳이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깜빡 잊어버리고 물건을 안 챙겨 왔다거나 하는 문제도 생길 일 없다. 대여 가능한 물품도 충분하니 담요나 충전기, 이어폰 같은 것들이 없어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24시간을 무인으로 운영하는 스터디 카페는 굳이 누군가와 대면할 필요가 없어서 편안하고, 오픈 시간을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고 언제든 내킬 때 방문할 수 있어서 자유롭다. 균일하지 않은 조명이나 부실한 책상이나 콘센트 부족이나 소음이나 무거운 짐이나, 카페에서 공부할 때 불편했던 모든 점들이 전부 해결된다. 그런가 하면 독서실 특유의 기간권 지정좌석제, 독서실 총무가 지켜보는 가운데 각 잡고 공부만 해야 할 것 같은 폐쇄적인 분위기, 작은 소음에도 무시무시한 경고가 날아드는 답답한 환경, 노트북 사용이나 키보드 타이핑 같은 소음에 적합하지 않은 분위기에서도 스터디 카페는 자유롭다.(물론 요즘 독서실들도 많이 바뀌긴 했겠지만) 내가 스터디 카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혼자만의 일들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 좋다. 아름다운 건축물로 구조가 잘 짜인 거대한 도서관에 가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도서관들은 다 작아서 그 점은 아쉽다..) 이렇게 조용하고 독립적이며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은 아마도 내가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최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나의 통제 욕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든 것들을 예측 가능하게, 내 뜻대로 통제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그건 예측 불가능하고 내게 해를 입힐 것 같은 모든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때문이겠지. 가장 통제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타인이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혼자 있고 싶어 하고... 쉽게 상처받기 때문에, 상처 입기 싫어서. 넉넉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한 지금, 나는 이전의 일상에 함몰되어 있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조금씩 한 걸음 떨어져 관찰해 볼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휩쓸려 살면서 자동적으로 반응하던 나의 패턴들에 대해서. 나는 자주 긴장하고, 큰일 날 것처럼 무서워하고, 순응하고, 말 잘 들었고... 과도하게 죄송하거나 과도하게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겁이 많으면 그만큼 조심할 수 있으니까, 위험한 상황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편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식으로 생존해 왔겠지만 그런 건 너무 쉽게 우울해지는 삶이지. 그래서 자꾸 도망가고 싶어 지고. 


 도망쳐서 내 시간을 얻어냈고, 나는 이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서 감히 다른 것들에는 시간을 쏟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오직 더 치열하게 더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진심을 담아 쓴 글에는 자꾸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가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또 한 가지 종류는 전문성을 획득하고 싶은 사람이다. 여기서 삐끗, 저기서 삐끗, 도망가며 살다 보니 진득하게 전문성을 키우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전문성을 추구하는 것도 내가 삶의 다른 측면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일지 모르겠다. 계기야 어떻든, 내적 추동이야 어떻든 나는 지금 더 이상 도망가고 싶지 않은 것, 정면 돌파하고 싶은 어떤 것, 어쩌면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전문성을 갖고 싶은 어떤 것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오직 이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는 다짐으로. 나는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스터디 카페에 간다.

작가의 이전글 공모전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