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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Apr 10. 2022

예민한 오늘을 기록하기, 음미하기

예민하고 예민한 사람의 일기

 이상하다. 거의 여름 날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덥지 않다. 얇고 톡톡한 재질의 긴팔 니트 티를 입었다. 뒷목과 쇄골 언저리가 훤하게 드러난다. 예쁜 모자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쓰고 다니는 볼캡은 2년 전쯤 복지몰에서 산 것이었다. 그때는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복지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복지몰을 뒤져서 적당히 저렴하고 평범해 보이는 볼캡을 샀는데 볼캡도 모양이 이상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머리 부분이 묘하게 빵모자처럼 납작통통하게 생겼다. 동생은 내가 이 모자를 쓴 것을 볼 때마다 놀린다. 이 모자를 쓴 모습을 볼 때마다 항상 놀리는데 나는 항상 이 모자를 쓴다. 내게 있는 모자가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자를 살까 생각해봤지만 고작 모자를 위해? 돈이 아까워진다. 게다가 집에는 머리가 하나인 동생이 사놓은 수많은 모자들이 있다. 그중 하나를 빌려 쓰면 된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내가 모자를 살 일은 없어진다. 아마도 이렇게 가족들이 자신에게 모자를 빌려 쓰는 것을 알고 동생은 더더욱 많은 모자를 사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겠지만...


 나는 내가 쓴 모자가 못생긴 걸 알고 있으니까 지겨운 놀림을 그만두라는 말을 하기도 지치고 짜증이 난다. 그러니까, 오늘은 특히 더 매사에 다 짜증이 나는 상태다. 나는 평소에도  예민한 편이지만 피곤한 상태가 되거나 맘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극단적으로 예민해진다. 사소한 접촉이나 사소한 어긋남이나 사소하게 눈에 거슬리는 것들 무엇에든 다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면 바로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는데 브런치 글씨는 왜 검은색이 아니라 옅은 회색이라 이렇게 읽기 힘들게 만드는 건가. 눈이 아프니 또 짜증이 난다. 브런치 글쓰기 창은 사용하기 불편하다. 글씨 색깔이 옅어서 잘 안 보일 뿐 아니라 글씨 크기 조정도 자유롭지 못하다. 태블릿으로 글을 쓸 때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커서 이용도 자유롭지 않다. 핸드폰으로 글을 쓸 때는 아마 부분 복사가 안 되었던 것 같은데. 모바일로 브런치 글을 읽을 때 역시 가장 큰 문제점은 글씨가 가늘고 옅은 색깔이라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초에 글씨를 읽기 어렵게 만들어 두었는데 누가 브런치를 보겠는가...


 내가 오늘따라 조금만 툭 건드려도 짜증이 나는 것은 어제 오후 1박 2일의 여행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피곤해서일 수도 있다. 나는 여행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가는 즐거운 여행이라면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여행은 가족들과 다 같이, 강아지까지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 나는 일찍이 여행을 가서 겪을 온갖 고난과 고통을 예견하여 여행 가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언제 또 이렇게 다 같이 여행을 가보겠느냐는 엄마의 주장과.. 혼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갈 수는 없다는 동생의 설득으로 결국 함께 다녀오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행은 큰 트러블 없이 무사히 잘 끝났다. 오히려 집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덜 싸웠다.


 나는 오후에 잠깐 동안만 산책을 나가도 그 짧은 시간 동안 결국 아빠와 싸워 버리고 만다. 사소한 모든 것들이 다 아빠와는 안 맞는다. 아빠랑 잘 맞는 사람도 있나? 아무튼 나는 아니다. 아빠와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축복받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심리학이든 문학이든 공부를 하면서 보면 아빠와의 불화는 너무 흔하고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퇴직을 하고 온종일 집에 붙어 있기 시작하면서, 나까지 잠시 일을 쉬느라 집에 붙어 있게 되니 온종일 집에서 함께 있게 되면서 봄철 산불 나듯이 우리 집안은 분노와 싸움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요즘 나는 식사할 때 아빠가 쩝쩝거리며 먹는 소리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아서 귀마개를 꽂은 채로 밥을 먹는다. 쓰레기를 절대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거나 변기의 물을 절대 내리지 않는 등 아빠의 사소한 습관들은 손쉽게 내 기분을 끔찍하게 만드는데 내가 아무리 싫음을 표현해도 아빠는 자신의 습관을 결코 고칠 생각이 없고 오히려 지적하는 내게 불같이 화를 낸다. 나 또한 그 습관을 아무렇지 않게 참고 넘어갈 만큼 능청스럽지가 못하다. 아빠는 원래 얼굴이 화난 표정이고 눈썹은 11시 10분의 각도가 기본값으로 되어 있다. 요즘은 그 얼굴마저 보고 싶지가 않아서 어떻게든 시선을 돌려버린다. 걸걸한 목소리가 듣기 싫은 것은 물론이다.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들어서야. 나는 금방 좌절하는 기분이 되고 만다.


 우리가 항상 이렇게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닌데, 딱히 사이좋을 것도 없었지만, 그러니까 싸우지 않았던 때는 서로가 바쁘고 멀리 떨어져 살았던 시기 동안이다. 아빠는 온종일 출근하러 밖에 나가 있고, 나는 먼 타지에서 혼자 사느라고 집에는 한두 달에 한 번씩이나 찾아가곤 했던 20대의 시기. 그래서 내가 그 시절이 그렇게 좋았다고 기억하는 걸까... 어쨌든 내게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주 못 만남 그래서 애틋함이 필요하다.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가 없다.


 사람들을 마주할 때 예민해지고 금방 지쳐버리기 때문에 회사 생활은 나를 금방 갉아먹어 버린다. 주 5일제에 매일 칼퇴를 하더라도 근근이 버티며 살았는데, 주 6일을 넘어서 주 7일 출근에 매일 야근이 반복되자 나는 한 달도 버티지 못했다. 남들은 그런 것들을 버티며 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내가 선택한 직업인데 내가 그리 불평불만을 쏟아놓는 게 우스워 보일 수도 있을 거다. 어떤 직업인이 자신 직업의 고충을 털어놓는 글을 보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 그만두든가. 하지만 그럴 수 없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지. 쉽게 발을 뺄 수 있었다면 이 정도로 앓는 소리를 내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 내 일상은 그래서 어떤가,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꾸려 가는 삶인데. 나는 자꾸 이전의 나와 비교하면서 내가 제대로 살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초조함으로 고심하고 있다. 더 많은 것들을 더 빨리 이루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급해지는데 그럴수록 글은 더 안 써진다. 시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소설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게다가 해볼 만한 공모전이 뜨면 동화도 써봐야겠다고 욕심을 부린다. 욕심인가? 욕심인지 아닌지를 몰라서 끙끙거린다. 우습게도 소설보다는 시에 돈을 더 많이 썼는데 나는 아직도 무슨 시가 더 좋은 시인지 모르겠고 시집을 보면서 별다른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지겹거나 어렵거나 둘 중 하나의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도 시를 쓰려고 하는 내가 우습다. 그런데도 섣불리 놓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익힐 시간이 지금뿐이라고 생각해서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최대한 많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야 한다. 이후에도 이런 시간은 주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회사 생활과 취준 공부 기간 중 언제가 더 힘드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회사 생활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 그 행복감에 공부를 하다가도 문득 혼자 웃음 짓던 것이 생각난다. 결국 또 시작된 회사 생활을 견디기 위해 나는 또 공부를 시작했고... 나는 현재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은 더 나은 삶으로 발전하는 동력이 되어 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삶을 음미해 줬으면 좋겠다.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현재를 음미하길. 그리고 맘껏 배우고 맘껏 읽고 맘껏 쓰길, 자유로워지길, 더 자유로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많이 기록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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