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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y 23. 2022

서른 살의 진로 고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도 빈 화면을 마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떻게 쓸지 막막할 때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보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시간은 오후 세 시, 하늘엔 구름이 조금 껴 있지만 맑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이다.


 밤에는 개구리 소리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새벽에 잠에서 깼다. 보통은 아주 캄캄할 때, 새벽 3~4시쯤 한번 잠에서 깬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새벽 다섯 시쯤 되었을까, 동이 트고 있었다. 그 시간의 공기는 온통 파랗게 물들어 있다. 새벽에는 온갖 종류의 새들이 지저귄다. 새들은 왜 그럴까. 아침의 시작을 알리며 지저귄다. 세상이 깨어나게 한다. 그래서 그 시간은 새들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잠시지만 새들이 차지하는 시간.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몇 번을 더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고 또 잠들기를 반복했다. 최종 일어난 시간은 오전 아홉 시였다. 어젯밤 잠든 시간은 아마도 새벽 한 시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로 마음먹었는데도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아마도 이 정도의 패턴이 잘 맞는 사람인가. 아무리 그래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 훨씬 기분이 좋다. 오전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분도 상쾌해진다.


 저번 주 화요일쯤 주문한 책이 오늘 도착했다. 오늘은 아무런 의욕이 없어서 집에만 있기로 일찌감치 결정한 채였다. 집안에서만 있으면 늘어지기 쉬운데 이 책들이 도착해서 나의 기분이 약간 상쾌해졌다. 문학잡지 한 권과 전공책 한 권이다. 잡지를 산 큰 이유는 궁금했던 작가의 글이 수록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만 먼저 읽어 보았다. 작가의 일상은 어떨까. 그런 궁금증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일상 글이나 일상 브이로그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잡지의 나머지 부분은 천천히 조금씩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또 한 권의 책은 전공 분야에서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론을 다루는 책이었다. 도대체 이게 뭘까 궁금해서 덜컥 사 버렸다. 전공책이라 그런지 인터넷에 떠도는 후기 같은 것도 잘 찾을 수가 없었다. 일단 번역자의 글을 보니 국내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맞는 모양이었다(이론의 이름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전공책의 번역서는 읽기가 난해한 편인데 잘 따라가며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된다면 즐거울 것 같다.


 어제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이직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잠시 일을 쉬면서 이직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갈만한 곳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 같았다. 이직을 하려면 지금 다니는 곳보다 무조건 좋은 조건... 을 지닌 곳이어야 후회가 없을 텐데, 지금 내게는 그렇게 좋은 곳에 덜컥 갈 수 있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지방 특성상 일자리가 많이 없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생각날 때마다 옮겨갈 만한 일자리가 없는지 찾아보고 체념하기의 연속이었다. 모든 걸 만족시켜 줄 만한 곳은 물론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거겠지? 그럼 나는 그냥 참고... 견디고... 그러려니 하며... 지금의 직장에서 머물러야 하는 걸까. 그냥 적당히 일하고, 기대를 내려놓고, 힘든 일이 있어도 존버 하면서... 쉬는 날 푹 쉬고 취미 생활도 하고 그러면서...


 어제도 채용 관련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꽤 그럴듯해 보이는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경력 채용이라서 지금보다는 높은 직급으로 일하는 조건이었다. 근무지가 타 지역이긴 한데(산골짜기라는 점이 문제였다..) 운전해서 가면 30분 이내로는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 그러려면 내가 운전 연습을 좀 해야겠지만... 관련 직종이긴 하지만 실제로 내가 했던 일과는 차이가 있었다. 전문적 숙달이 필요한 일이라서 내가 지원한다고 해도 나를 뽑기보다는 실무 경험이 많은 사람을 뽑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내가 입사지원서를 끝내주게 잘 써서 제출한다면 혹시라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서류 제출 마감까지 5일 정도가 남아있었다. 어제 오후는 그래서 내내 자기소개서를 썼다. 머리를 쥐어짜 내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건 꽤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띵한 머릿속으로 조금씩 현실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냥 내가 이직에 미친 걸까. 어디로든 새로운 곳에서 다른 시작을 하고 싶어서, 그냥 지금 있는 곳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앞뒤 분간 없이 더 후회되는 선택을 해버리는 건 아닌가. 새로운 시작이 겁이 나기도 했다. 새로운 직장에 가면 펼쳐질 온갖 단점들도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황하는 채로 또 멈춰 섰다. 역시 나는 그냥 이대로 있는 편이 나을까.


 정말로 누가 내 미래에 대해서 내 진로에 대해서 확실하게 딱 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너 어차피 다른 데 어딜 가도 만족 못해, 지금이 최선이야, 그냥 지금 거기 있어.라고 한다면 나는 이제 모든 마음을 내려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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