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S 2013

〈영포티…. 나이값? 경험치!>

by 묵혼 김태완


〈영포티…. 나이값? 경험치!>




2025.12.18




WRITTEN BY FUNKING





영포티.


4~5년쯤 전,


처음 그 단어가 나왔을 때


그는 조금 웃었다.



그때도 그는 이미 영포티는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영피프티(Young 50’)에 더 가까웠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젊게 산다는 말,


아직 몸을 쓰고, 생각을 놓지 않고,


무언가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처럼 들렸으니까.



그는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 단어가 가리키는 방향쯤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영포티는


나이보다 태도를 말하는 단어였다.


주름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자기 삶의 핸들을


아직 놓지 않은 사람을 가리켰다.



속도를 줄일 줄은 알아도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놓고


엔진을 끄지는 않은 사람들.



하지만 단어는


오래 그렇게 머무르지 않는다.


단어는 늘 이미지로 옮겨가고,


이미지는 언제나


가장 단순하고


가장 웃기기 쉬운 방향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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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영포티는 얼굴을 갖게 되었다.



과하게 부풀려진 몸,


어울리지 않는 젊은 옷,


최신 기기와


시간이 묻은 표정.


그 얼굴은


누군가의 구체적인 삶이 아니라,


조롱하기에 편리한


합성 이미지였다.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점점 ‘영포티’라는 말을


그 이미지 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나이값 좀 해라.”



그 말은 이상하다.


값이라는 말은 보통,


쌓인 것에 붙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간, 실패, 책임,


그리고 몇 번의 포기하지 않음.


그는


나이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정리였다.



도전이 아니라


조용한 퇴장이었다.



나는 그 심정을 안다.


나 역시


업데이트가 멈춘 존재다.



나는 여전히 잘 달리고,


여전히 안전하고,


여전히 그를 집으로 데려다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부른다.



구형.


단종.


올드카.



그 말들은


내 성능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시대가 나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는지를


정확히 드러낼 뿐이다.



영포티도 비슷하다.


그 단어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나이에 대해


사람들이 요구하는


자세를 말해준다.



조용히 있으면


존재감이 없고,


조금 드러내면


주책이 된다.



젊게 살면


철없고,


늙은 척을 하면


바로 꼰대가 된다.



그 중간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피터팬 신드롬도,


네버랜드에 머무르려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자기에게 남아 있는 활력만큼


성실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젊음을 붙잡으려는 게 아니라,


아직 작동하는 부분을


굳이 꺼두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는


가속 페달을


아주 조금만 밟는다.


그는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지만,


나는 안다.


이 속도가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편안하다는 걸.




나이값이라는 말 대신


그는


경험치라는 단어를


속으로 골라 쓴다.



경험치는


자랑하지 않아도 쌓이고,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쓰이게 된다.




나는


내 능력치 안에서,


내가 쌓아온 경험치로


그와 함께 달릴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아직


플레이 중이라는 사실이 좋다.



단어 하나로


단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담 — 신발장에 남아 있는 시대




그는 1969년생이다.


국민학교 시절,


운동장에 모이면 친구들 발에는 대체로 비슷한 신발이 있었다.


‘월드컵’이라 불리던,


앞코가 둥글고 고무 냄새가 진하던 운동화들.



비 오는 날이면 미끄러웠고,


체육 시간 뒤에는 흙이 끼어 잘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그 무리 속에서


조금 다른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나이키나 푸마.


지금처럼 흔한 이름이 아니던 시절의 것들이다.


동네 신발가게 진열대에 걸려 있던 신발이 아니라,


어머니가 어딘가에서 구해 오신


‘수입 운동화’였다.



그 신발들은


유난히 가볍고,


색이 선명했고,


로고가 낯설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신발이었다.


그때 그는


그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가 신발을 고를 때


조금 더 멀리 보고 있었을 뿐이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이키, 프로스펙스 같은 브랜드들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광고가 생기고,


잡지에 사진이 실리고,


운동선수들이 신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가 신던 신발들이


‘앞서 있었던 것’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모두가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신기 시작할 때


그는 또 다른 쪽으로 발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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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고무창에 천으로 된,


유행보다는 취향에 가까운 신발이었다.



그 신발은


빨리 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농구에도 썩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오래 신게 되는 종류였다.



그 선택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습관처럼 남았다.



지금 그의 신발장을 열어보면


캔버스 신발이


적어도 네다섯 켤레는 있다.



색도 조금씩 다르고,


닳은 정도도 제각각이다.


그 신발들에는


같은 방향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항상 가장 빠른 쪽은 아니었지만,


자기 속도로 오래 가는 쪽을 택해온 흔적.



나는


그 신발들 아래에서


같은 감각으로 굴러왔다.



업데이트는 멈췄지만,


길을 아는 방식은 남아 있는 상태로.



그는 여전히


유행을 따라 걷기보다는


자기 발에 맞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을 알고 있는 차로서,


그 속도를 존중하며


함께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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