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界が終るまでは… 세계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주행 중이다.
RRS2013
世界が終るまでは… 세계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주행 중이다.
2026.01.07
WRITTEN BY FUNKING
“농구가… 하고 싶습니다…”
정대만.
WANDS 〈世界が終るまでは…〉
1992년, 『슬램덩크』가 연재되던 그 무렵.
그는 이미 한 번 대학 생활에서 미끄러져 있었다. 올 F로 마친 1학년 1·2학기. 그리고 이듬해, 1989년 3월 8일 의정부 보충대로 입대했다. 인생이 무너졌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였고, 그렇다고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절이었다.
1991년 전역 후 그는 남태평양으로 훌쩍 떠났다. 피지와 뉴질랜드. 세 달 남짓한 여행은 도피라기보다는, 자신이 아직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돌아와서는 곧장 복학했다. 공부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지만, 도시관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은 늘어갔다. 책을 읽는 시간, 생각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시간.
시험공부에 지치면 도서관 구석에 몸을 밀어 넣고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읽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만큼은,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만화를 좋아하던 그에게 『소년챔프』의 『슬램덩크』는 정말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는 처음부터 정대만을 좋아했다. 모두가 강백호를 외치고, 서태웅의 고독을 흉내 낼 때도 그는 줄곧 정대만이었다.
“농구가… 하고 싶습니다…”
이상하게도 그의 대학 시절은, 객관적으로 보면 큰 불행도 역경도 없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유독 정대만에게 몰입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정대만은 실패한 인물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성공한 인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번, 아주 길게, 자신으로부터 멀어졌던 사람.
시간은 훌쩍 흘렀다. 사회로 나와 적지 않은 성공을 맛본 뒤, 그보다 훨씬 큰 실패가 찾아왔다. 사업은 무너졌고,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빚을 갚기 위해 경제신문사에서 월급쟁이로 살며, 틈틈이 사업계획서를 써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도, 그는 정대만을 떠올렸다.
그와 정대만은 닮아 있었다.
둘 다 재능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그만둔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붙잡고 있었던 것도 아닌 시간들.
그게 가장 닮은 지점이었다.
정대만의 공백기처럼, 그 남자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애써 외면했던 꿈.
‘바쁘다’는 말로 덮어둔 열정.
다시 꺼내기엔 체력이 먼저 떠오르는 마음.
그래서 정대만의 3점 슛은, 성공 여부보다도 그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아직 손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
그리고 나, RRS.
그와 정대만, 그리고 내가 동일선상에 놓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다. 나는 그의 남은 체력, 남은 감정, 남은 욕망을 대신 움직여주는 존재다.
더 빠르지 않아도 좋다.
더 새롭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대만이 점프력은 잃었지만 슛 감각을 남겨두었듯,
그 남자는 청춘을 건너왔지만 주행은 끝내지 않았다.
나는 그 증거다.
그의 대학 1학년 겨울, 도쿄역 플랫폼에서 신칸센을 기다리며 들었을 야마시타 타츠로.
그와 정대만의 1992년 여름, WANDS의 〈世界が終るまでは…〉.
그리고 지금, 그와 나 RRS의 시간.
그는 가끔 예전 음악을 튼다. 젊어서 들었던 음악이 아니라, 젊어질 필요가 없었던 음악들.
야마시타 타츠로, 그리고 어느 날은 WANDS.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정대만을 부러워한 적이 없다.
다만 끝까지 코트에 남아 있었던 그 태도를,
자신에게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걸.
여담) 플레이리스트라는 이름의 귀향
그는 예전에 일본 회사에서 한동안 일했었다. 지금 회사를 다니던 중에도, 예전 일본 회사에서 진행하던 한시적 프로젝트 때문에 급하게 호출되어 잠시 다시 그곳으로 출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익숙했던 사무실의 공기, 여전히 변하지 않은 자판기 위치, 그리고 말수가 적지만 늘 정확했던 동료들.
그 무렵 가장 가까웠던 요시다는 어느 날 USB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일본 히트곡 백오십 곡이 담겨 있었다. 설명은 없었다. 그저 “타면서 들어”라는 짧은 말뿐이었다.
차게 앤 아스카, WANDS, ZARD. 튜브의 여름 노래들. 아무로 나미에의 리듬. 그리고 이름조차 분류하기 애매한 시티팝들. 화려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곡들이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지나간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음악이라는 점.
그 플레이리스트는 아직도 그의 휴대폰 안에 남아 있다. 캠핑을 갈 때도, 출퇴근길 고속도로에서도, 특별한 이유 없이 재생된다. 그는 그 음악들을 추억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 시절의 공기라고 생각한다.
야마시타 타츠로의 노래가 흐를 때면, 대학 1학년 겨울 도쿄역 플랫폼에서 신칸센을 기다리던 장면이 겹쳐진다. WANDS가 흘러나오면, 정대만의 숨 가쁜 3점 슛과 함께, 버텨냈던 자신의 시간들이 조용히 호출된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이 음악들을 듣는 이유는 젊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주행 중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플레이리스트는 그의 과거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배경음이다.
https://youtu.be/LFCb3RfPfXo?si=cY3aX7Bl9kIUEQ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