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집에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RRS2013 : 그의 팬티드렁킹
2026.02.19
WRITTEN BY FUNKING
그는 원래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집에서 술을 드시지 않았다.
술은 늘 바깥에서 해결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집은 맑아야 했고,
가장은 흐트러지지 않아야 했다.
그는 그 원칙을 오래 붙들고 살았다.
그래서 그의 술은 늘 바깥에 있었다.
포장마차 플라스틱 의자 위에,
출장지 호텔 창가에,
대숲 사이 캠핑 테이블 위에.
초록 잔디 위에 놓인 캔 맥주처럼
그의 취기는 늘 바람을 맞고 있었다.
사업이 무너지고
삶이 기울던 시절.
그는 밖에서 마실 힘도 사라졌다.
그때 아내가 맥주를 열었다.
사과 막걸리, 생막걸리,
칭따오 위에 벚꽃잎을 얹어놓던 봄밤,
하이네켄 캔 옆에 놓인 젓가락과 숟가락,
족발과 순대가 펼쳐진 캠핑 테이블.
그녀는 술을 마신다기보다
그날을 정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 말이
맥주 캔 따는 소리 안에 들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술을 집보다는 밖에서 더 좋아한다.
산등성이에서 붉은 잔을 들고,
아락 병 옆에서 얼음이 녹아가고,
밤공기 속에서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 순간.
그럴 때 그는
세상과 조금 멀어진다.
하지만 요즘은 안다.
도쿄 호텔 방에서 컵라면과 사케를 마시던 밤도,
야경을 배경으로 도쿄 크래프트를 들던 순간도,
리조트 침대가 고요히 놓인 그 오후도,
결국 돌아올 곳이 있어야
의미가 있었다는 걸.
집이 없었다면
그 술들은 다 떠돌았을 것이다.
그가 집에서 맥주를 따기 시작한 건
5년쯤 전.
아내보다 늦었다.
처음엔 어색했고
괜히 아버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어느 날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하이볼 캔을 나눠 마시며
그는 깨달았다.
술은 집을 흐트러뜨리는 게 아니라
집을 더 솔직하게 만드는 도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절제를 남겼고,
아내는 허락을 남겼다.
그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은 부드러운 가장이 되었다.
이제 그의 술은
바깥에도 있고
집 안에도 있다.
캠핑 테이블 위에도,
호텔 책상 위에도,
소파 위에도.
하지만 끝은 늘 같다.
불이 켜진 거실,
잔을 내려놓는 소리,
“오늘도 수고했어.”
그는 이제 안다.
술은 장소가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을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