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S 2013 :

동강의 물길과 왕위의 길

by 묵혼 김태완

RRS 2013 "여왕과 사는 남자" 가 본 "왕과 사는 남자"


WRITTEN BY FUNKING


20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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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 나를 몰고 나가지 않았다.


아침 일찍 , 아내와 함께 집 앞 극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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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차장에 서서 그가 돌아오기를 하루 종일 기다렸다.



늦은 오후


귀가한 그는 다시 내 운전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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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은 걸지 않은 채


핸들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왕과 사는 남자… 생각보다 재미있네.”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동강의 물소리를 들었다.






청령포.



그는 그곳을 여러 번 지나갔다.


카약을 타고 동강을 내려가다가


강물 위에서 바라보던 작은 땅.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 같은 곳.



노를 저으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는 곳이지만


어린 왕 단종에게는


끝내 나갈 수 없는 땅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머릿속에는 역사보다 먼저


풍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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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역 앞 올갱이 해장국집들.


성호식당.


영월식당.


상동식당의 막국수.



어라연과 된꼬까리의 물빛.


영화 속 단종의 유배지는


그의 기억 속 동강 물길과 자꾸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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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그가 새삼 흥미롭게 느낀 것은


조선의 귀양이라는 제도였다.



귀양은 단순히 멀리 보내는 형벌이 아니었다.


귀양을 가는 양반은


귀양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대부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심지어


귀양을 호송하는 관리들의


숙식까지 책임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귀양도


결국 재력의 문제였다.



보길도에 갔을 때


그는 윤선도의 귀양지를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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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별장 같은 규모였다.


그는 그때 중얼거렸다.


“아… 이 양반 귀양도 재벌급으로 갔구나.”



귀양을 간 양반이


그곳에서 서당을 열어


후학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조선의 귀양은


유배이기도 했고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그가 가장 낯설게 느낀 인물은


한명회였다.



그가 알고 있던 한명회는


작고 왜소한 책략가였다.


삼국지의 방통 같은 이미지.




그런데 영화 속 한명회는 달랐다.


덩치 큰 배우 유지태가


굵은 목소리로 등장했다.


상남자 같은 한명회.



그 모습이


어린 단종을 더 작고 더 연약하게 보이게 했다.



아마 그 대비가


이 영화가 선택한 장치였을 것이다.




그는 영화관에서


아내에게 농담을 했다고 했다.


“유지태가 한명회면


수양은 최홍만 정도는 돼야 사이즈 맞는 거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조금 웃었다.


그의 역사 이야기에는


항상 이런 농담이 섞여 있었다.





수양대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찬탈자.


하지만 동시에


정치는 꽤 잘했던 왕.




그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수양이


왕위를 빼앗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계유정난에서


김종서와 황보인 세력만 제거하고


단종의 왕위를 지켜주는


숙부로 남았다면.




단종이 안정적으로 왕위를 이어가고


조선이 부국강병의 길을 걸었다면.



수양은 북방 정벌을 맡는 장군이 되고


한명회는 또 다른 정치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연산군의 비극도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 모른다.





역사는 언제나


이미 지나간 길이다.



하지만 그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왕들의 길과


사람들의 길은


동강의 물길처럼


어디선가 만났다가


다시 갈라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핸들을 한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 다시 동강 가야겠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동강을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강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곳에는


그가 지나온 시간과


지나가지 못한 역사들이



아직도


조용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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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수양대군의 집안 역시 흥미롭다.



수양의 아내 정희왕후


세조 사후 어린 성종이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며 정국을 이끌었다.




또한 수양의 며느리인 인수대비 역시


조선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그녀는 《내훈》을 저술하고


왕실과 조정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깊이 관여했다.




조선의 권력은


때로 왕의 뒤편에서


여인들의 손을 거쳐 움직이기도 했다.




어쩌면


왕과 사는 남자들 뒤에는



왕과 사는 여자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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