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하는 제자를 응원한다.
암 병동 입원실이다. 유방암으로 항암치료가 끝나고 방사선 치료차 5인실에 입원을 했다. 대각선 앞 침대의 환자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간병인의 말에 간간이 높은 음률로 단답형 대답을 하는 것이나 동작으로 보아 정상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치매인 것 같지도 않은 것이 나의 직업적인 감각을 자극했다. '장애인인가?' 그녀는 상체 부분이 세워진 침대에 기대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계속 흔들어댔다.
"고개 들어.”
"허리 펴."
간병인의 조금은 명령 같은 어투들이 마음에 와 꽂혔다. 나의 잦은 눈길이 느껴졌는지 간병인이 환자의 병세를 이야기했다. 척추를 바르게 세우지 못하니 고개가 자꾸 숙어져 들게 한다고. 대장암 수술을 했지만, 다른 장기에도 다 퍼져서 항암을 하지 못하고 급한 곳만 수술한다고. 척추에 만져질 정도로 큰 종양이 있어서 다음 주 수요일에 수술한다고. 그 외에도 전신에 많이 퍼져 있다고도 했다. 이야기 중에 환자가 고개를 들었다. 내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환자와 눈길이 마주친 순간 호흡이 멎는 듯했다. 어디서 본 얼굴? 아니, 재직했던 학교의 졸업생? 그리 모진 증상을 가진 환자가 제자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를 알겠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고개를 젓더니 나중엔 춤추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선샘!”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알아봐 주니 고마웠다. 간병인이 내게 이 제자의 부모가 없느냐고 물었다.
부모…
1986년도쯤이다. 학교에 출근하니 시끌시끌했다. 누군가 강보에 싸인 여자아이를 교문 앞에 두고 갔다는 것이다. 신상에 관한 정보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단다. 지적장애아를 학교와 같이 있는 장애인 사회복지시설 앞에 두고 간 것이었다. 그 아이 이름을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라는 의미로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여자 탤런트 이름으로 지었다. 율동을 잘해서 행사 때는 독보적인 활약을 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소리 지르며 도망가서 달래느라 진땀이 나기도 했다. 나와 함께하는 동안 그의 부모가 연락해 온 일은 없었다.
나이를 꼽아보니 그녀는 겨우 사십, 한창일 나이에 그런 건강 상태가 되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수고하는 간병인과 제자에게 줄 생과일주스와 조각 케이크를 샀다. 오랜 병원 생활에 뭔가 새로운 것이 먹고 싶을 텐데,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약소하지만 봉투도 함께 준비했다. 제자에게 필요한 것이나 먹고 싶은 것을 사주라는 부탁을했다. 그런데 내 마음 한구석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혈육도 아닌데, 제자에게 제대로 전해지겠느냐고. 허튼짓하지 말라`고. 오, 이런 마음에 부끄러움이 훅 일었다. 다행히 부끄러운 마음이 반란의 마음을 잠재웠다. 오히려, 사회복지시설 거주 장애인을 돌보아주는 간병인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 죄지은 미안함까지 담아 ‘제자의 간병을 맡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제자가 고집이 세서 힘들다고 했다. 지적장애인이 상황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어렵고, 사고력이 부족하여 자기 생각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힘든 점이 많을 터였다. 그래서 더욱 그 수고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자기 몸이 왜 아픈지도 모르고 투병하는 제자가 유년 시절부터 가족의 사랑 없이도 꿋꿋하게 잘 살아왔듯 이 아픔도 잘 이겨내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