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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Sep 18. 2024

꿈의 여행, 남아메리카 3

1. 페루 -3

다음날, 드디어 마추픽추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명명된 잉카제국의 고대도시다. 태양의 도시, 공중 도시, 그리고 잃어버린 도시, 유명세만큼이나 불리는 이름도 많다. 페루 레일과 셔틀버스로 마추픽추 입구까지 갔다. 한참을 걸어 꼭대기 망지기 집에 올라서니, 산 정상에 돌로 쌓아 만든 도시가 신비로운 주변 풍경과 함께 시선을 압도했다. 와이나피츄 산이 마추픽추 도시의 배경이 되어 더욱 장관을 이룬다. 이 멋진 배경이 없다면 마추픽추의 아름다움이 조금은 퇴색할 것 같았다. 태양의 신전, 정원, 제물을 바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단 등, 건물은 약 200호 정도라고 한다. 그 아래로 우루밤바 강으로 흘러드는 황톳빛 계곡이 도도히 흐른다. 마추픽추를 둘러싼 높고 낮은 산들의 봉우리에 구름이 걸쳐져 선을 이룬다. 관람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는 포즈들도 또 하나의 재미다. 알파카 한 마리가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풀을 뜯는다. 마냥 선한 눈빛으로 유순하게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것 같은 알파카의 모습도 가슴에 담아두었다.

마추픽추 산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올 때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아구아깔리엔떼스에 왔을 때는 장대비로 변했다. 마추픽추를 휘감아 흐르던 붉은 계곡물이 인도까지 침범할 것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아구아깔리엔떼스에서 점심식사 하고 수공예품 가게에 들러 소품 몇 가지를 샀다. 그중 방울 끈과 ‘CUSCO’라고 쓰인 털모자는 지금까지 잘 애용하고 있다. 방울끈을 모자에 두르면 이국적인 분위기가 시선을 끈다. 여행지에서 구매한 소품은 두고두고 여행의 추억을 불러온다.     




이어 오얀따이탐보로 이동했다. 잉카문명의 흔적을 따라 쿠스코 근교를 돌아보는 ‘성스러운 계곡’ 탐방이다. 이곳은 우루밤바의 곡창지대이자, 페루 역사상 최고의 잉카제국 요충지라고 한다. 태양신전을 지어 태양을 섬기고 달을 숭배하였으며, 하늘은 콘도르,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다. 앞산 중턱에 있는 기지 같은 곳은 곡식 저장고라고 한다. 산 밑에서 꼭대기까지 만들어진 계단식 밭은, 각 층마다 기르는 작물이 다르고 내진 설계와 관개 시설까지 되어 있다고 한다.         

모라이(Moray)는 해발 3,500m에 위치한 원형 계단밭으로 잉카인들의 농업 실험지다. 10m 높이 계단마다 토양과 온도가 달라 계단의 환경에 적합한 농작물 재배법을 연구한다. 원형을 어쩜 그리 정확하게 만들었는지, 연구하고 일하는 터지만 아름답기도 하다.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식재료인 감자의 원산지가 페루라니, 잉카인들이 이 농업 실험지에서 연구한 결과물이 아닌가. 앞으로 감자를 먹을 때, 잉카인들의 지혜와 수고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먹어야겠다. 




일행을 태운 자동차는 산속 염전으로 가는 살리네라스의 길을 달렸다. 옥수수와 밀을 재배하는 들이 푸르러서 상쾌해졌다. 오랜만에 보는 푸른 들이 눈부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산비탈의 안개가 바람에 곡예하듯 일렁인다. 어딜 봐도 산에 걸린 안개는 막힘없이 자유롭다. 살리네라스의 마라스 마을은 해발 3,000m에 위치한 산비탈 염전이다. 붉은 진흙밭처럼 보이는 염전은 헝겊을 이어 만든 조각보를 펼쳐놓은 것 같았다. 철분, 칼슘, 마그네슘을 함유해서 염전이 붉게 보인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지형에 순응하며 바둑판만 하게 일구고 일구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염전을 넓혀가지 않았을까. 칸칸이 나누어진 붉은 염전이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지만, 다랭이논농사처럼 힘든 건 아닐지 아릿한 마음이 들었다.      



     

삭사이와망으로 왔다. 언덕을 한참 오르니, 한가로운 공원에 바위 무더기가 나타났다. 쿠스코 북쪽, 거대한 석벽의 잉카제국 요새 터다. 원래 4~5층의 원형탑이었으나, 지금은 2층까지만 남아 있다. 석벽 모퉁이의 큰 바위는 모든 무게를 지탱하고 균형을 잡는다. 바위의 각진 부분이 유연하게 둥글려져 있다. 세월의 풍파가 모든 걸 둥글둥글 품어 주는 것 같았다. 그 석벽 사이에 끼인 자그마한 삼각돌 하나가 눈에 띈다. 어른들 틈에 있는 어린아이처럼 귀엽다. 성벽 옆 풀밭에 알파카들이 풀을 뜯으며, 사람들이 다가가도 동요가 없다. 요새 터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먼 산에 걸린 구름과 푸른 들에서 노니는 알파카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옛 역사의 아픔도 뒤로한 채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만든다. 가까이에 크리스토 블란코 전망대의 예수상이 붉은 쿠스코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식사인 김치찌개와 밥이 더없이 행복하게 했다.       


    

페루의 자연은 산과 함께 펼쳐지고, 어느 쪽 어느 산이든 그 산허리에는 어김없이 구름이 터를 잡고 있다. 서로 감고 풀며 자유로이 넘나들다 아름다운 색을 입는다. 원색의 조화와 손끝의 섬세함이 빚은 문명에 잉카인의 숨결이 스며 있었다. 다음 여행지 볼리비아도 그 영토였으니 그곳에서 잉카를 더 진하게 느껴보리라.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그래서 더 궁금한 볼리비아는 어떤 모습일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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