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님 Nov 06. 2024

꿈의 여행, 남아메리카 10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버스로 국경을 넘어, 브라질로 왔다. 마지막 여행 국가다. 포스두 이과수 전망대 길을 오르며 만나는 다양한 야생동물들도 흥미롭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 하얀 폭포, 물안개, 무지개 등이 함께 베풀어주는 향연이다. 같은 이과수강 폭포지만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이과수가 웅장하고 장대하다면, 브라질의 포스두 이과수는 아기자기하고 변화무쌍하다. 폭포도 사람처럼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뭇 다른 매력을 가졌다.

포스두 이과수 폭포

폭포의 낙차를 체험하기 위해 밀림 트럭을 탔다. 트럭은 관광객을 가득 태우고 밀림 사잇길을 달린다. 길섶의 식물들, 원숭이들 노는 모습이 신기하다. 선착장에서 지급된 방수팩과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를 타고 폭포 밑으로 간다. 설레발로 요동치는 가슴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물세례까지 맞으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도 “한 번 더”를 외치는 것은 뭔지, 평소 조용한 사람도 수다스러워져 더 재미있다. 방수를 해도 어찌 쏟아지는 물을 피할 수 있으랴.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고 돌아 나왔다. 헬기투어를 했으나 큰 감동은 얻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로 오는 비행 중에 보았던 광경을 조금 더 가까이 보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리우데자네이루에 왔다. 숙소에서 가까운 코파카바나 해변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백사장을 걸었다. 여느 해변이나 익숙한 광경들이다 싶었는데, 위대해 보이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대형 우산살 같은 것에 헝겊을 빡빡하게 매달아 어깨에 메고, 뭔지 모를 빵빵한 가방까지 들었다. 진기명기다. 저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저렇게 다닐 수 있나 궁금하여 가까이 가보니 수영복이다. 조그만 수영복들을 저리 많이 매다니 대형 수영복 가게 못지않다.

움지이는 수영복 가게

이 꿈같은 코파카바나 해변을 걷고 있다는 만족감에 젖어 계속 걸었다. 이제는 배도 고프고 해서 되돌아섰다. 그런데, 갈 때의 길이 아니고 낯설다. 숙소로 돌아갈 길을 염두에 두고 몇 블록 왔는지, 특정 건물이 무엇인지 보면서 왔는데, 가야 할 도로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아차, 길을 잃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자 머리가 하얘졌다. 갑자기 사람들이 무서워 보였다. 길 찾는다고 헤매다가는 더 꼬일 것 같아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뭐라 말해야 하는데 말이 안 나왔다. 현지인일 것 같은 사람에게 호텔 명함을 내밀었다. 모른다고 되레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와, 정차해 있는 택시 문을 두드렸다. 기사가 유리문을 내렸다. 그제야 호텔 명함을 내밀며 한국에서 왔다, 여기로 가자라고 했다. 나를 훑어보더니 타라고 한다. 내 호텔로 가는 줄 알았더니, 다른 호텔로 들어가며 따라오란다.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호텔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준 호텔 명함을 보이며 뭐라 이야기 하니, 지도를 보고 그림을 그려준다. 그 택시를 다시 타고 가는데 엄청 돌아가는 것 같다. 내가 호텔에서 걸어 나온 거리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멀리 왔었나, 나쁜 사람인가,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택시 기사가 가다가 왼쪽을 가리켰다. 내 호텔이 보였다. 그제야 움츠린 어깨가 스르르 내려갔다. 택시 요금이 얼마였는지 기억 없지만, 거스름돈은 안 받았다. 호텔 앞에 서니 잠시 잊고 있던 배고픔이 밀려왔다. 마트에서 요깃거리를 샀다.   

   


다음날, 코르코바두산 정상에 있는 예수상을 보러 가는 길이다. 가는 도중 대형 기념품 매장에 들렀다 나오는데, 현지인인 듯한 남자가 “대~한민국 짜자~짝, 짝짝” 한다. 우리도 반갑게 호응했다. 이 리듬이 외국인은 어렵다는데 어쩜, 정확하다. 언덕을 오르니 예수상의 뒷모습이 보인다. 높이 30m, 팔 벌린 길이가 28m로 엄청난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머리를 힘껏 뒤로 젖혀야  예수상 전체를 볼 수 있다. 흐르는 구름에 예수상도 같이 흘러, 울렁울렁 움직이는 것 같아 아찔하다.

코르코바두산의 예수상

예수상 아래 모인 사람들은 거대한 예수상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으니 사진을 찍는 포즈들도 각양각색이다. 여기서 독사진 찍기란 거의 불가능하여 자신이 중심에 위치만 해도 성공이다. 다양한 인종이, 다양한 포즈로 함께 찍힌 사진이 나중에 보니 의외로 재미있다. 예수상 아래에서 보는 리우데자네이루의 풍경은, 이 항구가 왜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환상, 그 자체다.      



칠레 출신의 미술가 셀라론이 타일을 붙여 만들었다는 ‘셀라론의 계단’에 갔다. 1990년부터 215계단을 2,000개의 다양한 타일로 꾸몄다. 나중에는 수많은 국가에서 타일을 기증했다는데, 그래서인지 각국의 타일이 다채로운 세계 문화를 엿보게 한다. 계단이 있는 마을의 벽화와도 조화를 이룬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에 들어서니 복잡했던 마음이 그냥 평온해진다. 1976년 문을 연 현대적인 건축양식으로 원뿔형의 독특한 모양이다. 사면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바닥부터 천정까지 뻗어 열십자 모양으로 만난다. 이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창을 더 아름답게 물들이며, 신비로움을 더해 종교적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팡지아수까르, 빵 봉지 모양의 거대한 바위 한 개가 리우데자네이루를 더욱 빛나게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최대 396m인 정상에 올랐다. 리우데자네이루 항구와 해안선, 아까 보았던 코르코바두산 예수상이 십자가 모양으로 아스라이 보인다. 코파카바나 해변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니, 이리 아름다운 해변이었나, 다시 보게 된다. 가깝게 보는 것보다 멀리서 전체를 보는 매력이 있다. 반달 모양의 해변에 흰 모래와 건물들과 푸른 물과 하늘, 큰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캔버스에 담긴 한 폭의 그림이다. 어제 길 잃은 이방인을 그리 당황하게 해놓고 이렇게 시치미를 뚝 떼다니. 누군들 알겠는가. 무슨 일이 있었든 묵묵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코파카바나 해변

그렇게 남미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 리우데자네이루는 예상하지 못한 반가운 선물 같은 곳이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리우에서 상파울로-프랑크푸르트로 왔다. 아시아나 항공으로 환승하여 인천공항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변수가 많아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으로 변경되었다. 오랜만에 운행된 관계로 만석이었다. 인천공항 검역대를 거치는데 오히려 ‘청정지역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 일행 도착 후 3일여 뒤엔 국경이 닫히는 등 상당히 심각한 코로나19 상태가 되었다. 조금 늦었으면 발이 묶일 뻔했다.

여행하는 동안 남미 매력에 푹 빠져 지냈다. 여행할 때도 좋지만 준비하는 동안의 설렘도 좋다. 다녀온 이후에는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예기치 않은 일에, 새로운 일에 여유롭게 다가가는 지혜를 배운다. 요즘은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남미가 나오면 여행의 추억들이 되살아나고 더 깊이 알게 되어 반갑다. 내 일생을 두고 곱씹을 보물 추억이 된 여행이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고 하지 않던가. 긴 여행에서 한껏 넓어진 시야로 불편했던 것들과 화해하며 살아 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꿈의 여행, 남아메리카 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