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에서 만난 사람들

*백구와 보슬이

by 이서안

남자가 키우던 반려견의 이름은 백구다.

앞서 키우던 장군이의 새끼들 중 한 마리이다.

모습만 동물의 형상을 하고 태어났을 뿐 그에겐 사람과 같은 가족이다.

북실북실한 하얀 털에 덩치가 있어서 마치 북극곰을 연상케 하는 백구는 말귀도 잘 알아들을 뿐 아니라 큰 덩치에 부리는 애교는 일상의 지친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남자의 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남자가 집에 도착도 하기 전에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나타날 때까지 대문 안은 우당탕탕 난리가 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자에게 올라타 안기고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어대고 혀로 핥고 난리 법석 소동 같은 환영식을 치른 후에야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산책은 매일 다녀왔다. 13년을 키우는 동안 단 하루도 산책을 빠트린 적이 없다.

날씨와 산책과는 전혀 무관했다.

비가 오면 우의를 입혔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걸었다. 함박눈이 오는 날은 눈을 쫓아다니느라 백구는 더 신이 났다.

궂은날은 다녀오면 물방울을 닦아내고 눈을 털고 마른 수건으로, 드라이어로 꼼꼼하게 털을 말렸다.

간혹 남자가 친척 집 대. 소사로 육지에 다녀와야 할 때가 있어서 집을 비울 땐 내가 두어 번 산책을 대신 데리고 나간 적이 있었다.

앞서 걷던 백구도 이상했던지 걷다 돌아서서 나를 한번 쳐다보고 또 조금 걷다가 뒤를 돌아보곤 하였다. 남자를 찾고 있었다.

이혼을 하고 고향인 제주로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남자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백구는 혼자 남아 살아가는 남자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눈곱을 닦아주고, 빗질을 해주고 볼을 대고 쓰다듬고, 간식을 챙기고, 눈을 보며 말을 걸면 백구는 말을 알아듣는 듯했고 둘은 외롭지 않았다.

백구는 몸이 아프면 남자가 자는 방 앞에서 와서 짖음과 낑낑의 중간 형태의 울음소리를 내는데 남자는 그 소리를 용케 알아듣고는 약을 챙겨 먹이곤 했다.

백구가 있는 곳은 늘 남자의 방문 앞이다.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남자가 아침, 저녁 기도를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그가 집에 있을 때는 방문 앞을 떠나는 법이 없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고된 삶의 위로가 되었고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때 서부 턴가 밥그릇의 사료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처음엔 녀석이 사료 말고 맛있는 걸 내놓으라고 하는 가벼운 시위를 정도로 받아들이고는 좋아하는 별미를 마련해 주어도 입을 대는 시늉만 할 뿐 도통 먹으려 하지 않았다.

백구의 몸이 현저하게 말라갔다. 남자는 애가 탔다. 기력회복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다 먹이고 수액을 맞히고, 전문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았지만 특별한 원인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기를 두어 달 백구는 시름시름 그렇게 남자의 품을 떠났다.

늘어진 백구를 끌어안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죄스럽고, 미안한 감정에 복받친 나이 든 남자는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남자는 상실감과 허전함으로 겨울날 낮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처럼 어둡고 우울했다. 오래도록 심하게 펫로스 증후군을 겪었다. 저녁 운동길에도 백구와 다니던 산책길로는 일부러 피해 다녔고 꿈에라도 백구가 나타나 그리운 마음을 달래주길 바라다가도 꿈에 백구가 보이는 날에는 더욱 힘들어했다.

'어제 백구가 나에게 막 달려오는 꿈을 꿨어.....'

생전 백구에게는 산책길에 만나는 보슬이라는 이름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긴털과 검정 바탕에 어깨와 다리 쪽에 흰 털이 섞여있는 보더 컬리였다.

동선이 비슷한 산책길에 자주 마주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여서 주인들은 만나면 가끔 다리 쉼도 할 겸 쉬며 둘의 목줄을 풀어 준다.

둘은 꼬리들 흔들고 냄새를 맡고 핥기도 하며 한참을 신나게 뛰어놀다 돌아오곤 했다. 백구도 보슬이도 신기하게도 둘에게 만 관심을 보였다. 다른 상대에게는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원인도 모르게 말라가는 백구의 모습을 보슬이도 안쓰럽게 바라보곤 했다. 분명 "얼른 기운 차려요" 말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백구가 죽은 후 길에서 우연히 보슬이 주인을 만났다.

"백구는요?" 하고 묻는다.

그간의 백구 소식을 전하며."보슬이 건강하게 잘 키우세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백구는 동네 지인의 야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남자는 백구와의 추억을 기리며 해마다 백구 산소에 벌초도 다녀오고 제사를 지낸다. 백구제사도 사람의 제사와 다르지 않다. 단지 다르다면 술 대신 바나나우유를 따라 주고 절을 하는 대신 천수경을 독경해 주며 극락왕생 천도를 빌어준다. 사진을 세워두고 향을 피우고 생전에 좋아하던 순대와 족발을 제상에 올려주고 혼백이라도 와서 맛있게 먹고 가길 기원했다.

백구가 죽은 지 2년째 되는 제삿날이었다.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며"여기가 혹시 백구네 집인가요? 한다.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뜻밖에 보슬이가 문 앞에 와있어 깜짝 놀랐다.

보슬이 주인은 남자네 집이 어느 부근 어느 근처에 산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었다. 그날도 보슬이와 산책을 하는데 보슬이가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한 번도 가지 않던 길로 자기를 끌더라는 것이다. 이상했지만 그냥 보슬이가 가자는 데로 가보자는 맘으로 따라왔다고 했다,

보슬이는 남자가 대문을 열고 나오자 생전 백구를 만났을 때처럼 꼬리를 치며 반기더니 대문 안으로 들어가더니 예전 백구가 살던 집을 한 바퀴 쓰윽 돌다 나오는 거였다.

남자는 보슬이를 쓰다듬으며

"와줘서 고마워 우리 백구가 불렀구나 오늘이 백구 제삿날이란다"

보슬이 주인은 오늘 일어난 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흠칫 놀란 눈을 한다.

"그렇군요....."

남자는 집으로 가자며 목줄을 끌어도 움쩍 않는 보슬이를 한참 달랜 후에야 발길을 떼는 보슬이를 동네 어귀까지 함께 바래다주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거라"

멀어지는 보슬이의 뒷모습 뒤로 배웅하는 백구의 환영을 언뜻 본 것 같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물상에서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