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에서 만난 사람들

*시계추 아저씨*

by 이서안

출근을 하니 사무실 문 앞에 푸릇한 호박잎이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 놓여있다.

'왔다 갔구나'

그를 알기 시작한 건 내가 고물상에 막 취직을 했을 때부터니까 벌써 15년이 넘었다.

정확한 키는 모르지만 나와 나란히 섰을 때 그의 어깨가 내 어깨를 올라오지 않는 걸 짐작하면 내 키보다 작은 150 정도가 될 것이다.

키가 작다 보니 운전을 할 때는 클러치에 발이 닿지 않아 운전석 허리 뒤에 두툼한 쿠션을 놓아 등을 받쳐야 했다. 기성복으로는 맞는 바지가 없어서 헌 옷 더미에서 사이즈가 크게 나온 아동용 바지를 고르거나 고무줄로 된 운동복바지를 주로 입고 다닌다.

작은 체구에 비해 손이 크다.

장갑도 끼지 않고 일하는 그의 손가락은 굵고 마디마다 관절이 튀어나와 있어 옹이 박힌 지팡이 같다.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은 단순히 반복된 노동의 흔적을 넘어 한 개인이 세상을 버티며 써 내려간 생전기록이며 자서전 같다. 글자로 세상을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손바닥의 굳은살은 유일한 자격증이자 훈장이다.

그는 공업단지 안에 있는 공업소나 자동차서비스센터 같은 곳에 계약을 맺어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해 주고, 처리 비용 대신 사업장에서 작업하다 나온 자투리 고철이나 비철, 모아 놓은 상품 포장 박스등으로 갖고 와 파는 일을 한다.

30년 넘게 이일을 해왔고 고지식할 정도로 순박한 고집에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거래처도 많아 고물상에서는 이 사람을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거래처에서 걷어오는 물량이 꽤 많다 보니 고물상마다 그의 물량에 탐을 내고 단골로 삼으려 한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그가 운전면허를 따려고 자동차 필기시험을 치는데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지 신청용지에 수입인지를 더 이상 붙일 데가 없었다고 한다. 운전면허 시험장이 생긴 이래, 그의 유례없는 불합격 기록을 아직까지도 깨는 이가 없다고 하니 요샛말로 웃픈 기록 보유자다.

어느 날은 어깨가 축 내려간 모습으로 속상함을 털어놓는다. 거래처를 뺏겼다는 것이다.

배운 것 없이 살다 보면 배운 논리와 힘센 무력 앞에서 간혹 부당하고 억울하게 거래처를 뺏기기도 하지만 그는 맞서 싸우기보다 스스로 비켜서며 요령 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몸을 부딪쳐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배운 것 없다는 자격지심을 성실함이라는 가장 정직한 무기로 맞서는 그만의 세상살이 전략이다.

10년 전 참하고 얌전한 네팔 처자를 데려와 장가도 갔다.

남자는,

나이도 어린 신부가 네팔에서 제주까지 나이 많고 볼품없는 자신을 믿고 시집와준 것이 측은하고 고마웠고,

여자는,

술. 담배도 안 하고 허튼 곳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가정적이며, 자신이 김치공장에 일을 다니며 받은 월급을 네팔 가족에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남자가 고마웠다.

아직까지 아이가 없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부는 크게 불만이 없어 보인다.

그는 골방 쥐 곳간 드나들 듯 하루에 열 번 정도를 고물상에 들락거린다.

처음엔 왜 다른 이들처럼 한꺼번에 싣고 오면 편할 텐데 조금씩 싣고 올까 했다.

이유는 체력이 문제였다

몸이 왜소하고 키가 작아 많은 물량을 높게 쌓아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씩 자주 오는 것이었다.

하루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서 누군가 '시계불알'같다고 한 말이 그 사람의 별칭이 되었다.

한 번은 그와 심하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서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도 내 사과를 받아들였는지 다음날 집 텃밭에서 솎아낸 어린 배추 한 봉지를 갖다 주며 양옆 주위를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야! 사랑한다" 하는 것이었다.

예? 푸핫! 순간 웃음이 났다.

"아~! 예~~! 고객님! 저도 사랑합니다 "라고 응수를 해줬다.

그 후로도 호박잎이며 상추나 푸성귀 등을 뽑아서 가져다준다.

문제는 네팔 아내 모르게 갖다 준다는 것이다.

조만간 머리끄덩이를 잡힐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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