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노숙자 -
스핑크스 자세로 앉아있던 귀때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있는 목청껏 짖어댄다.
그 소리에 창밖을 내다본다. 발 사이즈에 맞지 않은 큰 신발을 신은 탓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이 발에서 먼저 떨어져 덜그럭거렸다
귀때기가 남자의 곁을 바싹 붙어 따라오며 사납게 짖어댄다.
'처음 보는데 넌 누구? 누구냐니까 이 냄새는 뭐냐고?'
귀때기만의 언어로 정신없이 짖어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남자.
구레나룻부터 내려오는 턱수염은 깎지 않아 얼굴 전체가 희고 검은 털로 덮여있었고, 감지 않은 머리카락은 봉두 산발, 간밤에 옆으로 웅크리고 잔 탓인지 얼굴 한쪽 면과 머리카락은 심하게 눌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더러운 옷차림과 씻지 않은 체취가 술 냄새와 한데 섞여 악취를 풍기는 것이 거리의 노숙자 행색을 하고 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긴 어려운데 중년과 노인의 중간쯤일 것 같았다.
소주병 몇 개와 누군가 벗어놓고 간 길거리의 옷들을 주워다 담은 비닐봉지를 바닥에 툭 던져놓고는 그냥 서있다. 계산해 달라는 것이다.
갖고 온 물건을 저울에 달아봐야 300원 남짓. 적선하듯 천 원짜리 한 장을 내어준다. 말도 없이 고개를 한번 꾸벅이며 돌아서는 그에게선 이른 아침인데도 빈속에 마신 강소주 냄새가 훅~! 났다.
귀때기가 그를 따라가며 쫓아내 듯 또 짖어댄다. 그가 철문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돌아선다.
여기서 잠깐 귀때기 얘기를 하자면, 예전 기르던 개가 낳은 여러 마리 새끼들 중 한 마리인데 나머지 개들은 이집저집 분양을 해주고 귀때기만 남았다.
젖먹이 어린 새끼 때부터 특이하게 귀가 곧추서있어서 고물상 야적장 귀퉁이를 빌려 쓰고 있던 중고박사장이 '저놈 귀때기 좀 보소'라고 한말이 이름이 되었다.
몸집과 크기는 진돗개를, 생김새는 셰퍼트를 닮아 늑대개를 연상시키는 믹스견이다. 멋있고 날렵하게 잘생긴 녀석은 사람도 잘 따르고 영리하기까지 해 직원들 사이에선 귀여움을 받고 있다. 고물상에 들락거리는 단골 상인들에겐 절대 짖지 않는다. 귀때기가 짖는 사람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나, 오래된 옛 골동품이나 중고품을 구해볼까 찾아와 주인 양해도 구하지 않고 고물상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며 기웃거리는 낯선 이들이다.
수문장 격인 귀때기가 짖을 땐 내다봐야 한다 이유가 있다.
나는 그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왜 이렇게 사는지, 어떤 딱한 사연이 있는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집은 어디고, 가족은 어찌 되었는지, 어디서 무엇을 했었는지, 상투적인 질문을 늘 던지고 있었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고물상들은 밤새 돌아다니며 줏어 실어 놓은 물건들을(박스, 신문, 고철, 냄비 등)일찍 팔러 오는 상인들 때문에 아침 6시엔 문을 연다.
어느 날 사장님이 말을 했다. 문을 열려고 왔는데 그 남자가 지나는 신문 배달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1.000원을 주고 신문을 사서 읽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의 사연이 더욱 궁금해졌다.
얘기를 나누고 싶어도 그의 눈빛은 모든 걸 차단하는 단절의 눈빛을 갖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 내린 형벌을 받고 있는 듯 죄책감이나 후회에서 잠시나마 놓여나기 위해 스스로가 만든 고립 같았다.
철저하게 외로운 고독만이 유일한 위안인 것처럼.
깊고 어둡고 죽음 같은 고독만이 고통이고 휴식인 것처럼.
그날도 남자가 갖고 온 빈병 몇 개를 눈짐작으로 대충 계산해 2.000원을 주며 지출 영수증을 써야 하니 이름을 한번 써 달라고 전표를 내밀었다.
의도된 계획이었다. 뭐라도 알아내고 싶었다.
이름? 그가 놀란 듯 주춤한다.
그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서 섬광이 인다.
마침내 그가 이름을 쓰고 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름을 다 쓰고는 이름 옆에 쿡!하고 마침표까지 찍고는 볼펜을 던지 듯 내려놓는다.
김 ㅇㅇ. 그가 쓰고 간 필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휘갈겨 쓰기는 했지만 달필이었다. 필체에선 학자의 냄새도 관직의 냄새도 났다. 유명인의 사인을 받았을 때처럼 묘한 흥분이 일었다.
글씨는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나에 대해서 알려고도, 물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내가 만든 단절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를 날리고 있는 듯했다.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가시나무숲은 일종의 실험이자 저항 처럼 보였다.
낯섦을 받아들였나 보다 이젠 그가 와도 귀때기가 짖지 않는다.
며칠씩 연이어 오기도 했고 가끔 오기도 했다. 그의 방문은 일정하지가 않았다.
그해 혹독한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도 그는 오지 않았다. 그가 사라졌다.
혹한의 겨울은 어찌 났는지. 잘못되진 않았는지. 가끔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어느 초여름 아침 출근길에서였다.
도로변 잡풀 베기 작업을 하고 있는지 잘린 풀들이 짙은 생풀 냄새를 풍기며 도로 위까지 흩뿌려져 있었다. 저 앞쪽에서 차선을 변경하라는 수신호가 눈에 들어온다. 차들은 속도를 못 내고 지나고 있었다.
녹색 야광조끼를 입고 작업하는 인부들 틈에서 잘린 풀들을 마대에 쓸어 담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반가웠다. 겨울을 이겨내셨구나. 스스로 들어간 거친 숲에서 나오셨구나.
위태로움을 딛고 선 그가 아침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