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에서 만난 사람들

by 이서안

- 오토바이 할아버지-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속도를 줄이며 가까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운전 솜씨로 저울대 위로 올라와 무게를 잰다

운전대 밑 발을 얹도록 되어 있는 좁은 공간에 빨간색 노끈으로 십자로 묶인 신문 한 덩이가 올려져 있다.

총량 무게 200KG. 공차 무게 160KG를 빼면 신문 실량은 40KG

신문단가 1KG당 100원을 계산하면 4.000원이 신문값이 된다.

계량 영수증과 천 원짜리 넉장을 받아 들곤 커피 자판기로 가서 커피 버튼을 누르며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1940년생. 전라도 장흥이 고향이라는 할아버지는 젊었을 땐 성질도 사납고 거칠어 이곳저곳을 떠돌며 난봉꾼으로 살았다고 한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떠돌다가 뒤늦게 돌아와 가족들한테 미안함이 많다며 후회를 하셨다.

지금은 그 미안함에 보상이라도 하 듯 몸도 정신도 온전치 않은 할머니의 병시중을 당신이 하고 계신다고 했다.

가끔은 전선을 불에 태워 만든 구리를 한 봉지 갖고 오실 때가 있다.

그래봐야 4,5킬로 남짓.

구리는 상. 중. 하로 나뉘는데

상) 구리는 전선의 굵기와 상관없이 깨끗하게 피복을 벗겨 낸 것 을 말한다.

중) 구리는 전선을 칼이나 도구로 벗겨내기 힘들어 불을 질러 피복을 태워 녹여낸 것,

하) 구리는 모터 안에서 나온 에나멜도금이 입혀진 구리다.

"구리를 갖고 와야 만 원짜리를 구경 하제"

"나가 어젯밤 이놈을 불에 태우다가 경찰서에 잡혀가서 경고도 먹고 아들에게 혼이 났당께"

"나가 무서운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여! 근디 나이 들어 봉께 젤로 무서운 게 아들입디다" 하며 헛헛하게 웃으셨다.

그 후로도 주위의 민원과 아들의 눈을 피해 태운 구리를 가끔씩 갖고 와 팔아가곤 하셨다.

위암으로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는 할아버지 몸 무게는 50킬로 남짓 마른 몸피를 가졌다.

할머니의 수발이 힘이 부치셨는지 결국 할머니를 김녕에 있는 요양원에 모셨다며 씁쓸해하셨다.

"미안허제 미안혀도 나가 도저히 힘에 부친께... "

여름날 수박 두덩이 와 요구르트 몇 줄을 사서 오토바이에 싣고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데 발밑에 놓인 수박이 떨어질까 봐 속도도 못 내고 두 시간을 걸려 다녀왔다고도 했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었을 때 한 달 정도를 모습이 보이지 않더니 오리털 점퍼를 겹겹이 껴입으시고 나타나셨다. 그동안 왜 안 오셨냐 뭔 일이라도 있어냐며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으며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뽑아드렸다.

며칠 전 할머니 상을 치렀노라며 허공에다 회한에 찬 담배 연기를 내뿜고 계셨다.

"혼자 있어도 요양원에 있을 땐 괜찮았는디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영 못 쓰겠네"

그러고는 차츰 고물상에 오시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일주일 한 번에서 보름에 한 번으로. 급기야 달을 넘기고, 계절이 바뀌어가는데도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추석을 일주일 남긴 어느 날, 어떤 부름이었을까?

왜 하필 그날 불현듯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고물상에서는 추석과 설날이면 별것 아니지만 김이나 식용유 등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가 단골손님들에게 설 선물을 나눠준다.

할아버지 몫으로도 챙겨 놓았으니 오셔서 갖고 가시라고, 핑계 삼아 안부도 물어볼 참이었다.

여보세요? 젊은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네~혹시 ***할아버지 전화 아닌가요?

맞는데요? 어디세요? 아~네! 네! 그러셨군요.

전화기 너머 딸이라는 여자는 오늘이 아버지 49재 날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아버님께 전화 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한다.

기가 막힌 우연에 머리끝이 서고 가슴 한쪽이 서늘하니 뻐근하게 조여 왔다.

전화기를 내려놓고도 한참 동안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망자도, 나도 서로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안부를 묻고 있었다.

굽은 등으로 휘적휘적 팔을 흔들며 걸었고 오토바이에 올라타면 풀었던 점퍼 자크를 목 끝까지 올려 잠그고 헬맷을 쓴다, 헬멧 위에 쏟아져 반사된 햇볕에 눈이 부셨던 기억이 났다.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친 나에게 쓰윽! 웃어주며 시동을 걸던 생전 모습이 떠올라 울적했다.

"나 감세"

그가 웃고 있었다. 좋은 곳에서 부디 영면하시길 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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