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에서 만난 사람들

*왕년에 골프선수*

by 이서안

박스가 실린 낯선 차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저울대 위에 올라선다.

차 창문을 열어 두리번거리다 나와 시선 이 마주치자 "나 처음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죠? 하고 묻듯이

박스가 실린 적재함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뛰어나가 박스 내리는 장소를 가르쳐 주고 총량을 달았으니 박스를 내리고 와서 공차를 달면

내린 박스 무게를 알 수 있다고 요령을 설명해줬다.

고맙다며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여기 일을 하다 보면 단골들의 이름, 차 번호, 전화번호, 공차 무게 정도는 거의 알고 있다.

오늘 온 지금 차량은 우리 고물상에 처음 나타난 뉴페이스가 맞다.

박스를 내리고 계산을 하러 그가 내게 걸어온다.

다리는 절며 끌었고 한쪽 팔은 힘없이 늘어져 흔들거리고 있었다.

뇌질환으로 쓰러졌다 일어난 전형적인 환자의 모습이다.

조금 전 인사를 할 때 비틀린 얼굴 표정이 이해가 됐다.

오른쪽을 못 쓰고 있었다.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박스를 쌓고 싣고 밧줄을 매었을까 놀라웠다

박스 값과 계량 영수증을 내주며 영수증에 수납 확인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난감했다.

이 영수증은 회계사에 넘겨져 매입 자료로 쓰이기 때문에 본인의 인적 사항과 본인 자필사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64년으로 시작하는 주민번호와 이름을 왼손으로 비뚤비뚤 써 내려간다.

어눌한 말투, 말을 듣지 않는 육체 그는 이겨 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매일 박스를 싣고 들어왔다. 그의 안쓰러움이 눈에 익어 불편함이 본모습인 것처럼 느껴지고

자연스러워 진지 1년 정도가 지났을 어느 날,

계산을 해드리고 한가한 틈을 타 자판기에서 뽑은 차 한 잔을 하며 얘기를 나눈다.

"처음보다 몸이 아주 좋아지셨어요"

"그래요? 저도 느껴요 "

"근데 복장이 박스 작업하며 입기엔 아까워요. 일 끝나고 어디 외출 가세요?"

"아~옷이요? 예전에 골프 칠 때 입었던 옷이에요.

집에 모시고 놔두면 뭐해요 이렇게라도 입고 헐려서 버려야지."

골프요? 나는 묻고 그는 대답을 한다.

"예~ 예전에 골프선수였어요 일본서 선수로 뛰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니 그의 복장엔 고급 브랜드의 로고들이 박혀 있었다.

반대편 입꼬리가 올라가서 균형이 깨진 얼굴로 어눌하게 골프라는 단어를 말할 땐 반짝 변하는 눈빛을 보았다.건강한 몸으로 광활한 푸른 잔디 위를 걷고 있었다.

술을 많이 마셨고 화려하고 흥청거렸고 문란했었다고.

경기의 부담을 술로 풀었고 그 스트레스가 뇌출혈로 왔다.

뇌 수술을 하고 겨우 살아나 반신불수가 되고 보니 꿈만 같았다.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왜 누워 있어야 하는지, 자신이 누군지도 몰랐다

꿈이라고 믿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예전 멋진 모습으로 돌아와 있을 줄 알았다.

모든 게 날아간 후였다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나이 든 부모님의 수발을 받으며 재활을 시작했다.

말을 듣지 않는 무뎌진 몸을 들고 일으키고 넘어지기를 수백 번. 정기적으로 뇌 검사를 받았고 유명하다는 한 의원을 찾아가 침도 맞았다. 간신히 땅을 딛고 혼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와는 이혼을 했다. 아이는 엄마를 따라갔다.

나이 든 부모님은 노쇠하셨고 몇 년 동안 한 푼 수입 없이 지내다 보니 붉은 글씨의 고지서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기초 생활 수급자로 신청한 것이 인정이 되어서 다달이 들어오는 돈이 수입의 전부였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신용이 낮아도 대출을 해준다는 보이시 피싱에 속아 돈도 뜯겼다

딱 죽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박스를 주워다 파는 걸 보았다.

몸은 불편하지만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덤벼 볼 만했다.

운전은 할 수 있었다. 중고차 한 대를 어찌어찌 마련을 했다.

남들보다 싣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못하는 게 아니니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다.

정상인이었다면 몇십 분이면 족하게 실을 100KG 남짓 박스를 싣는 데 한나절이 걸렸다.

처음으로 박스를 팔아 받아 든 돈을 들고서 가슴이 울컥하고 목젖이 뜨거웠다고 했다.

이제 살았다 싶었다고. 그렇게 저주하던 내일이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매일 하는 박스 작업은 생활이며 곧 재활이 되었다.

다리에 힘이 생기고 걸음걸이도 가벼워졌고 얼굴도 차츰 돌아와 대칭이 맞아갔다.

이제는 낮엔 박스를 줍고 밤에는 아파트 경비를 맡아 일도 다닌다.

오늘도 그의 박스 실은 차가 휘청거리며 들어온다.

'많이도 실었네' 혼자 중얼거려 본다.

우리는 살면서 어느 순간 그 결정이 '신의 한 수'였어라고 할 때가 있다.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문을 주신다고 한다. 절대로 문을 동시에 잠그지 않는다고.

구석까지 몰아넣고 포기다 싶은 순간 열리는 문이 있다.

그가 그 문고리를 잡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나는 그가 다시 재기를 해 멋진 나이스 샷을 날리고 홀컵 안으로 공이 빨려 들어가는 행운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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