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대신 매맞는 차
벚꽃송이들이 망울망울 맺히기 시작했고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서랍을 열어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손수건을 대각선으로 반을 접어 목에 둘렀다.
나름 봄맞이였다.
출근을 하고 정수기에 따뜻한 물을 한잔 받아와 홀짝이며 마신다.
시계 추 아저씨, 개장수 아줌마, 몇몇 일찍 물건을 팔러 들어오는 사람들과 눈인사도 나누고
자판기 커피도 빼주며 변함없는 고정 단골임을 확인한다.
평상시와 별반 없는 일상이 순조롭게 흐르고 있었다.
오전 10쯤 신문 단가를 묻는 전화가 왔다. KG당 120원이라고 알려줬다.
신문을 한차 가득 실었고 물량이 많으니 단가에서 10원을 더 달라는 흥정 전화였다.
전화 목소리가 낯이 익어 기억을 떠올려보니 어렴풋 생각이 난다. 70세가량의 노인이었는데 작은 키와
나이에 비해 단단하고 다부진 몸을 갖고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자주는 아니지만 드문드문 오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우리 고물상을 거래한 건 아니었다.
이곳저곳 고물상마다 돌아다니며 물건값을 물어보고 10원이라도 더 주는 곳에 물건을 파는 닳고 닳은 흥정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물상은 저울장사라서 무게는 곧 돈이고, 물량이 많을 때는 고물상들은 물건을 받을 욕심에 단가보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매입을 하려 한다.
이 노인이 주로 갖고 오는 품목은 신문과 알루미늄캔이었다.
"오케이 "130원을 주기로 했다.
예전에 다녔던 고물상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그땐 사모님이 경리일을 겸하며 장사를 했기 때문에 별 부담이 없었는데, 이곳으로 이직해 오면서 물건 매입에 경리일을 하며 장사까지 해야 했다.
물건 종류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시세와 정해진 단가에 맞춰 매입해야 하고 손님들과도 친근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서 단골도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이 부담이 되었지만 내가 하는 장사 같아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300원짜리 물건을 500원을 주고 잘못 사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렇게 차액도 적고 물량이 적을 경우엔 손실금이 적어서 다행이지만 물량이 많았을 경우엔 손해를 보기도 한다.
특히 전선 매입할때는 신경을 써야한다. 전선 안에 들어 있는 구리수율에 따라 매입 단가가 다르고 단가는 그날의 구리시세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전선을 살때는 꼭 구리 시세를 먼저 알아봐야한다. 지금도 전선 매입이 제일 어렵다.
때마침 사장님은 거래처에 물건을 실으러 나가셔서 부재중인 상황.
얼마 후 1톤 차 한 대가 타이어가 터질 듯이 신문을 싣고 저울 위를 올라탔다.
노인은 차가 저울대에 올라가니 저울을 확인하고 총량숫자를 손바닥에 적고 있었다.
저울 때문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거나,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박스나 신문, 고철 등 무겁거나 양이 많이 실려있을 때는 집게 장비를 이용해서 물건을 내려준다. 장비기사로부터 볼멘소리로 올라와서 신문 상태를 확인하라는 전화가 왔다.
'뭔 일이 있군.'
신문 상태가 너무 엉망이었다. 습기와 곰팡이로 뒤덮이고 눅눅하니 썩기 직전의 책과 신문들은 숫제 거름이었다. 오래도록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정리해서 갖고 온 것이라고 했다.
보통 이럴 땐 습기 대비 -% 감량이 들어간다.
"삼촌! 원래는 감량을 해야 하는데 감량을 하지 말고 대신 기본단가 120원으로 하게 마씀.이건 130원 못 드리쿠다"
신문이 이런 상태인 줄 알았으면 10원 더 드린다고 말을 안 했고, 물건을 보지 않고 단가를 더 주겠다고 말한 건 실수였다며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노인은 안된다며 막무가내로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감량도 하지 말라 약속한 대로 단가도 더 달라며 떼쓰기에 가까운 고집을 부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업체로 갈 걸 여기로 잘못 왔다느니 하며 감정을 격하게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욱하고 화가 올라왔지만 다시 달래며 조율점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노인의 귀는 이미 닫혀있었고 마치 고목나무 안에 단단히 틀어박힌 나무옹이 같았다.
그럼 다시 실어 드릴 테니 갖고 가시라고 응수를 하며 그와 나는 팽팽히 맞섰다.
"부장님 이 손님 물건 다시 실어드리세요".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나를 잡아채더니 욕설과 함께 얼굴을
향해 주먹이 날아온다.순간! 어지러웠다
뭐지? 입술이 터졌다.
"참나~! 씨발 ~! 이하르방이 미쳤구나"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서로에게 온갖 흉악한 욕설이 오갔고 내 손이 노인네 얼굴까지 올라갔으나 차마 때리지 못했다.
놀란 장비기사가 뛰어 내려와 뜯어말린다.
나보고 참으란다. "네 눈에 이게 참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이니? 내가 맞았다니까!."
소리를 질렀다.
신발이 벗겨지고 옷이 뜯겨나가고 미친년처럼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쪽구석 고물로 들어온 골프채 드라이버가 눈에 들어왔다. 골프채를 집어 들어 휘둘렀다
내가 무기를 드니 다들 움찔한다.
바로 차로 향해 걸어갔다 신발이 벗어진 채 맨발이었다.
운전석 앞 유리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내리 쳤다. 한번! 텅! 튕겨 나오는 반동으로 몸이 휘청거렸다.
두 번! 유리창 정수리에 쫘악하고 거미줄처럼 금이 번졌다.
라스트 세 번! 쫘르르 완전히 박살 나는 순간, 쾌감으로 온몸에 전율까지 일어났다.
사이드미러가 깨져서 대롱거렸고, 아무도 내 근처엔 오려고 하지 않았다.
주인 대신 매 맞은 차량의 매타작을 구경하고 있었다. 차는 깨지고 찌그러지고 멍투성이가 되어갔다.
경찰차와 함께 거래처에 나갔던 사장님이 부리나케 들어왔다.
경찰이 내 손에서 골프채를 뺏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성난 황소의 콧김처럼 씩씩거리고 있었다.
경찰과 노인과 사장님이 한참을 얘기하더니 서로가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원만하게 해결을 보시라는 말을 남기고 경찰은 돌아갔다.
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을 하고 가방을 챙겨 들고 퇴근을 했다.
재채기가 날 만큼 햇살이 간지러웠다.
'제기랄 날은 좋네'
목에 두른 꽃무늬 스카프를 풀었다. 꽃들이 어색하게 풀풀하게 웃고 있었다.
혀로 입술을 건드려보았다. 부풀어 올라 있었다.
분함과 서글픔과 자괴감이 진창으로 반죽된 복받친 눈물이 났다.
다음날 출근을 안 했다. 회사로부터 전화가 여러 통 왔지만 받지 않았다.
마침내 사모님이 집으로 데리러 와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사장님께 자초지종 정황 설명드리고 죄송하다고 말을 했다.
노인이 먼저 폭행을 했고 서로 맞고소해 봐야 득이 될 것이 없으니 부서진 차량은 전적으로 회사 쪽에서 모두 수리해 주는 조건으로 합의가 된 것 같았다.
"장사 잘하고 부정 없고 손님들과 융화 잘하는 경리를 요즘 어디 가서 구해. 찻값 물어주고 잡는 게 낫지."
누군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지금껏 잘리지 않고 변함없이 출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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