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에서 만난 사람들
주산의 달인

by 이서안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가 돌아가고 난 후 사모님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일하는 이곳은 예전 D업체에서 일을 하다 그만두고 이직한 곳이다.

이전 직장에서 4년. 이곳에서 11년째 근무하고 있다.

지금 얘기는 처음 다녔던 곳 D에서 만난 사람의 일화이다

그의 몸집은 작고 말라 왜소했다. 행색은 남루했고 어수룩했으며 말투는 어눌했다.

한쪽 다리가 몸 안으로 굽은 선천적 안짱다리를 갖고 있어서 걸을땐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걸었다.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박스나 신문, 고철, 철캔, 냄비 등을 주워다 모아 두었다가 얼마간의 운임을 주고

1톤 차를 빌려 물건을 싣고 팔러 온다. 그가 작정하고 한번 팔러 오는 물건은 다양하고 양도 많다.

그가 싣고 오는 물건들은 고철,신문은 물론이고 팔면 돈이 되는 온갖 재활용품들이 자잘하고 복잡하게 실려있어 마치 고물상 종합선물 같았다.

종류별로 단가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 무게를 달아야 한다.

예를 들면

박스 무게 *단가=금액

신문 무게*단가=금액

양은 무게 *단가=금액

=합계금액

고철을 내렸는지, 철캔을 내렸는지, 신문을 내렸는지를 눈으로 차량을 좇으며 어떤 물건을 얼마큼 내렸는지 수량을 정확하게 체크해야 한다.

일하는 입장에선 박스면 박스. 신문이면 신문. 한 품목을 단품으로 갖고 오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종류가 많을 땐 숫제 메모지를 챙겨 들고나가 무게를 적어온다.

돈 계산은 늘 사모님이 하셨는데 계산을 해 줄 때마다 무게를 조금씩 줄이기도 하고

눈치를 보며 실수인 척 품목을 한두 개 슬쩍 빼놓고 대충 계산하는 노련미를 보여준다.

양은 무게가 20킬로였다면 15킬로로, 박스가 300킬로면 250킬로 무게를 줄여서 계산하는 식이었다.

그래도 그는 아무 말 없이 돈을 받아 가곤 했다.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맘이 불편했지만 자주 보니 그러려니 했다.

초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그가 왔다.

고향이 거창인 사모님은 반기며

"비도 오는데 오늘은 집에서 쉬제 이리 왔노"한다.

언제 물건을 실어달라 약속된 차량이라 비가 온다고 다른 날로 미룰 수 없었을 것이다.

계산을 마치고 돈을 받아 들고 선심 쓰듯 뽑아 준 자판기 율무차 한잔을 마시고 그는 여느 때처럼 별말 없이 돌아갔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우산도 안 쓰고 비를 맞으며 비척거리는 불편한 걸음으로 나타났다.

" 어째 왔노? 와? 뭔 일 있나?"

사는 곳이 A동이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버스를 타고 왔단다.

그는 어눌하고 느린 말투로 더듬으며 말을 한다

"계.. 계산... 트.. 틀려서..."

비에 젖어 구겨진 영수증과 함께 접혀 있는 돈을 내민다. 조금 전 받아 간 금액 그대로였다.

사모님은 대충 계산을 해보는 척하다가,

"맞구먼은 뭐가 틀렸노" 하며 얼버무리고 귀찮은 듯 달래서 얼른 돌려보내고 싶어 했다.

그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주섬 거리며 뭔가를 꺼내든다

주판이었다.

영수증을 도로 받아 들더니 검지를 이용해 맨 윗줄의 엉클어진 주판알에

선을 그었다. 짜르륵 주판알은 소리를 내며 일렬로 섰다.

일렬로 나란히 줄지어 선 주판알들은 마치 법정 안 판사 앞에서 죄를 짓고 판형을 기다리는 죄목들 같았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이 능숙하고 날렵하게 주판 위에 움직일 때마다 주판알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주산을 끝내고 주판을 보여주며 총합계금액에서 18.000원을 덜 받았다는 것이다.

사모님이 20.000원짜리 품목을 2.000원으로 계산해서 생긴 오차였다.

생각지 못한 그의 주판에 사모의 얼굴엔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지난날 난 네가 나에게 한 짓을 모두 알고 있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옴마야~! 미안하데이 전화로 얘기해도 될 것을 비 맞고 왔나? 율무차 줄까?

사모님은 미안하고 부끄러운 상황을 친근함으로 모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 후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거래는 계속되었지만

계량과 계산이 정확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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