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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 프란치스코 Jan 06. 2021

장르극, 코로나19

12.  코로나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

 해방이 되고 나서 해외에 살고 있던 동포들이 귀국했을 때 입국 절차로 처음 맞닥뜨린 것은 DDT였다. 미군이 분말로 된 DDT를 귀국 동포의 머리 위로 쏟아붓는 사진이 미 국립문서관에 남아있다. DDT를 뿌리는 미군은 사제였고, 소독이라는 세례 행위를 통해서 근대적인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귀국동포였다. 소독은 비위생적이고 불결한 것들을 위생적이고 근대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학의 세례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소독은 다시 우리를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었다.


 모든 입구에 소독제가 놓였다.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시설에도, 행사장 앞에도, 가게 입구에도, 곳곳에 소독제가 놓였다. 부지런한 시민은 나와 남을 위하여 장소가 바뀔 때마다 에탄올로 손을 소독한다. 소독은 멸균이다. 살아있는 나쁜 생명체를 죽이는 행위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손도 생명의 지체이므로 생명체다. 우리의 '손 씻기'는 나쁜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행위이다. 소독용으로 쓰이는 에탄올은 우리 피부의 지질층을 파괴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최외각 방어선을 무력화시킨다. 코로나로부터 나를 지키지 위한 방역선은 나의 신체를 지키기 위한 방역선을 파괴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지불하고 희생하는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고강도란 마치 에탄올 함량이 높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작년 6월에 5세 어린이가 엘리베이터에 비치된 코로나 소독제를 손에 바르려다 에탄올이 눈에 들어가 각막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흔히 쓰고 있는 소독제는 보통 60에서 80% 정도의 에탄올 함량을 가진 것이 많다. 안과에서는 라섹 수술을 할 때 에탄올을 이용해 각막 상피세포층을 제거하는데, 이 에탄올의 농도가 20%를 넘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외상을 입은 상처 부위나 수술 부위 등에는 에탄올을 소독제로 쓰지 않는다. 알코올에 의한 손상을 막기 위해서다. 코로나 초기에는 에탄올 함량이 높은 것이 좋은 소독제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다. 에탄올 농도가 올라가면 효과도 올라갈까? 그렇지 않다. 에탄올은 함량이 올라가 95% 정도에 이르면 오히려 효과가 없다. 농도가 높으면 목표물에 닿자마자 상대의 껍질을 단단하게 변성시켜 오히려 안으로 침투하기가 어려워진다.


 코로나에 대한 비용이 비단 나의 피부만은 아니다. 몸과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니 몸과 건강의 비용이 가장 직접적일 것이다.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경제적 약자들이 먼저 해고된다. 실업은 코로나의 공포보다 훨씬 더 무섭다. 코로나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지만, 실업은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코로나 사태와 같은 사회적 이벤트를 통한 스트레스는 보건 의학적으로 진한 흔적을 남긴다.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다. 코로나로 의료 자원이 집중되어 제때에 혹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죽게 되는 간접 사망자보다, 더 나중에, 통계가 나왔을 때에야 확인하게 되는 숨겨진 사망자들이다. 굳이 더 사회경제적 비용에 대하여 말하지 않겠다. 대신 앞에서 등장한 DDT 이야기로 마무리하겠다.


 작년에, 2020년에, 읽었던 과학서적 중에서 비교적 짧지만 글쓰기로 나를 매혹시킨 책은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이다. 이 책에서 율라 비스는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DDT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저널리스트 티나 로젠버그도 “이 책보다 더 크게 세상을 바꾼 책은 별로 없다”고 인정했으나,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DDT는 환경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흰머리 독수리들을 죽였지만, ‘침묵의 봄’은 대중의 뇌리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오늘날 아프리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율라 비스는 계속해서, ‘DDT는 카슨의 우려와는 좀 다른 물질이었다’고 말한다. DDT가 발암 물질이라는 특별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나마 말라리아 통제에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인 DDT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말라리아가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사실이라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때로는 공포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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