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까만 고양이였다.
생긴 게 까매서 '밤' 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아이였다.
고양이답지 않게 사람에게 쉽게 안겼고, 쉽게 부비적 댔고, 쉽게 그르릉 거렸다. 나와 내 동생 뒤를 잘 따라다녔고 무릎위에 올라 앉아 둥글게 몸을 말고는 눈을 감았다. 서늘하지만 따뜻한 가을 햇볕 때문에 졸음이 오는 모양이었다.
집고양이인 것 같았다.
까슬하지만 윤기 있는 검은 털과 황녹색 눈. 집을 나온 지 오래 되었나. 귀는 청소가 안 되어 먼지가 쌓였고, 먹지 못했는지 많이 말라 있었다. 내 친구 집 고양이는 이렇게 마르지 않았었는데. 굶었을까 걱정이 되어 참치캔을 사오니 흥분하며 달려들었다. 내 옷을 잡고 늘어졌고 마구 뛰어올라 참치캔을 할퀴었다. 물도 주지 못하고, 접시에 담아주지도 못하고 캔 채로 내주었다. 고양이는 캔 안에 있는 윤기 있는 참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걱정이 되었다. 저러다 캔 때문에 상처가 나면 어쩌지. 말리려 들었지만 듣질 않았다. 주둥이를 캔 안에 박고 열심히 핥아 먹었다. 다 먹고 나서는 몇 번이고 캔 안에 혀를 집어넣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곤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일어나면 같이 일어났고, 집으로 걸어가면 같이 뒤따라갔다. 나와 동생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질까봐 조마조마 하는 것 같았다.
너는 그렇게 걱정이 되었던 걸까.
마트 앞에서 동생과 마주친 고양이었다.
문 밖에서 동생이 흥분 가득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를 때엔 가을 햇볕이 정말 따뜻한 오전이었다. 동생 옆에는 까만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아주 잠깐,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망설였고 한 발을 조심스레 내딛으며 집을 살폈다. 이내 유연한 까만 몸은 사뿐사뿐 집 안으로 건너왔다. 인상 깊은 손님이었다. 엄마에게도 부비적 댔고 동생과 나에게도 부비적 거렸다. 너 고양이 맞니. 왜 이렇게 살가워. 처음 보는 사람이잖아 우리. 그 아이는 집 안을 수시로 돌아다녔다.
왜 내 동생을 따라 온거니.
우리가 어떤 사람일지 어떻게 알고.
세 시간 동안 고양이를 품에서 내려놓질 않았다. 우리를 너무 좋아했고, 우리도 그런 고양이가 참 좋았다. 이렇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다니. 나는 잠시 잠깐 이 고양이와 함께 할 미래를 생각했다. 내일 아침 일어날 때 얘가 깨워주면 참 좋겠다. 꾹꾹이도 많이 해주고.
그런 일은 없었다.
주인이 있는 고양이라면, 이 아이를 키우는 건 도둑질이라고. 엄마는 고양이를 밖에 놓고 오라 했다. 엄마가 미웠다. 하지만 별 다른 방도가 없었다. 동물병원은 문을 닫았고, 고양이는 우리를 너무 잘 따랐다. 배가 고파 보였고, 많이 약해 보였다.
현관문을 나설 때 망설였다고 했다.
문 앞에서 몇 번이고 뒤돌았고, 발을 내밀었다 다시 끌어안고, 내밀다 끌어안고를 반복했다고 했다. 내 동생을 따라 힘겹게 문을 나설 때 너는 알고 있었겠지. 이게 우리의 세 시간 동안의 만남의 끝이라는 걸. 고양이는 제 발로 트럭 안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동생은 잠시 울었다.
그러니까 너는 우리를 따라오지 말았어야 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를 따라오지 말았어야 해. 우리 말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좀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 좀 더 윤택하게 사는 사람을 만나서, 너를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을 따라갔어야 해.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러다 나도 울어버렸다.
조건 없이 모든 정을 줬던 너에게 내가 준 것은 상처였으니까.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가 말해줬다.
그것도 고양이의 삶이야.
조금 위로가 되었다. 너의 삶이구나. 이렇게 길고양이가 된 것도 너의 삶이고, 우리와 헤어지는 것도 너의 삶이구나. 갑자기 세상이 달리 보였다. 나는 네가 불쌍했던 것 같다.
나는 불쌍함이라는 감정이 싫다.
타인과 나의 격차를 보며 내가 좀 더 좋은 위치에 있구나, 아 저 사람은 좀 안 되었다, 내가 좀 베풀어야지 하는 비열한 온정. 누구나 평등하다. 불쌍한 사람은 없다. 다만, 쓸모없는 존재로 격하된 실존이 있을 뿐이다. 그들을 다시 합당한 이 지평으로 끌어 올려야 맞는 일이다. 불쌍함은 그래서 비열하다. 그들에게 베푸는 온정은 시혜의 은총이다. 내가 권력자니까 너에게 이 정도는 베풀 수 있어. 난 불쌍함이라는 감정이 싫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내가 너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던 것 같아서.
그런데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고양이에게 불쌍함은 좋지 않은 감정인걸까. 어떻게 해야 너에게 예의를 갖추는 걸까. 아니, 이제 예의를 갖추면 뭐해. 네가 주던 사랑에 흠집을 내버렸는걸. 나는 고양이에게마저 상처 주는 인간이었다.
이 작은 이별도 이렇게나 힘이 드는데 앞으로 견뎌야 할 이별 앞에서 나는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말까.
하지만 저 생각도 비열한 것이다. 고양이가 아닌 나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니까.
어제 고양이와 짧은 만남이 있었다. 오늘 마트를 다녀왔다. 트럭 안에도, 동생과 고양이가 처음 만난 마트 앞에도, 어제 참치캔을 먹었던 곳에도 고양이는 없었다. 빈 참치캔이 뒤집어진 어제 상태 그대로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디를 가야 할 일이 있었다. 어제 만난 고양이를 생각하며 집 밖을 나오는데 어디선가, 짧게, 야옹- 하고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구름이 옅게 지나갔다. 바람이 불었다. 뭔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바뀌어 버렸다. 돌아오지 않을 뭔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뭔가가 바뀐 것 같았다.
세상의 지축이 아주 조금 기운 것 같았고 고양이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어디에도 까만 고양이는 없었다. 밤아- 하고 불러주고 싶은 고양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뭔가 많이 바뀌어 버렸다. 곧 개가 짖었다.
세상은 침묵했다.
침묵은 제일 안 좋은 것이다.
난 존나 나쁜 년이다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