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브리핑을 보며 떠오른 단상
얼마 전 수능이 끝났다.
내가 수능을 보러 가던 날이 떠올랐다.
우리학교가 아닌 여고였는데, 오르막길이 참 가팔라 이 오르막을 매일 걷는 아이들은 힘들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내 생각을 하면서 울었다고 했다.
그냥 그 기억이 나는 게 다였다.
지금 수능을 보는 아이들이 뭐 어쨌다고. 하기야. 그동안 정말 힘들었겠지. 누구 하나 실수하지 말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보면 좋겠다고, 모두 웃으며 시험장을 나오면 좋겠다고 잠깐 바랬다. 그리고 금방 잊었다.
손석희 앵커의 앵커브리핑을 봤다. 창백한 푸른 점. 우주에서 찍은 지구는 저 창백한 푸른 점. 저 작은 점 하나였다. 그 점, 그 행성, 그 행성 안에 저 점보다도 더 작은 나라에서는 수험생들이 가슴졸이며 시험을 봤다.
그리고 살아있었다면 시험을 볼 수 있었을 아이들이 있었다.
손석희 앵커가 단원고 학생의 교복 사진을 띄웠고, 나는 그 익숙할법한, 그러나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교복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아. 너희가 살아있었다면 수능을 봤었겠구나.
그제야 내가 매몰차게 나쁜년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난 다른사람들 보단 세월호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정말 나쁜년이었구나. 이런식으로 날 포장하고, 자기기만하고, 그들을 잊고 있었구나.
그 아이들의 교복은 여전히 방 안에 걸려있는데.
나는 여전히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것도, 저렇게 모두가 기만하며 잊혀지는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다시 모니터 앞에서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일이 너무나 고되고 힘들더라도,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내가 쓴 글을 쳐다보기 싫더라도, 여전히 누군가는 이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으니까, 나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 그 질문에 답을 해야하니까, 응당 그 답을 해야하니까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써야만 하는 것이다.
모두 잊지 말자던 그 다짐을 잊었기에,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기에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미안하다. 이제 모두의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지워졌지만,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이제 다시 기억할께.
수능이 끝났다.
이젠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다.
나도 다시 새 희망을 걸고 시작하겠다.
지금 내 모습이 창백한 푸른 점, 별 것 아니어 보여도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은 그 이상의 의미일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