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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Jun 23. 2023

암실 속에서 펼쳐진 바다는

병원에 갔던 아홉 살

별일 없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어린 나이의 초등학생에게는 자신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네 병원에서는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엄마도 아빠도 매일같이 일을 나가서 대학병원에 곧장 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지내고 있었고, 내 오른쪽 귀도 그냥 잊어갔던 것이다. 어느 날 엄마는 내게 학교를 중간에 마치고 일찍 집에 오면 된다고 말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우리 지역에 있는 큰 대학병원이었다.




병원 안에 들어서자 보였던 그때 그 모든 것들은 정신없고 복잡했다. 무리 지어 모여 있는 사람들, 저 사람은 의사, 저 사람은 환자···, 높은 천장과 그걸 지탱하기 위해 높게 뻗어 있는 기둥, 그리고 쉴 새 없이 들리는 말소리와 기계 소리까지 모두 처음 겪는 것들이었다.


병원은 마치 커다란 수족관 같았다.





엄마가 접수를 마치고, 나는 청력 검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검사실로 들어가니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사물함처럼 생긴 그 박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둘러본 내부는 아주 좁고 어두웠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헤드셋처럼 생긴 것 두 개를 내 귀와 목 주변에 교차해서 끼웠다. 그리고 내 손에 게임기 조이스틱처럼 생긴 장치를 쥐여줬다.


의사 선생님은 다시 나간 뒤 건너편에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녹음실처럼 투명한 창을 두고 있어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바로 보였고, 의사 선생님이 마이크를 쓰면 목소리가 내 공간에 울렸고 내가 대답할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그게 아주 작게라도 들리면 내가 쥐고 있던 장치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되었다. 청력 검사가 시작됐다. 쏴아- 하는 파도 소리, 쉬익거리는 바람 소리, 그리고 목까지 크게 울리는 뱃고동 소리···



암실 속 나는 어느새 바닷가에 와 있었다.






그때 내 귀와 목에 전해졌던 소리와 울림들은 지금도 가끔씩 이명처럼 들린다. 그 청력 검사로 인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똑같은 파도 소리, 뱃고동 소리가 여전히 울린다.



내 귀에서 바다가 펼쳐진다.

나는 언제든 바다로 갈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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