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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위하여 Nov 23. 2024

이혼의 아픔 #8

시작의 알림 8

잠에서 덜 깬 기분으로 멍하니 창밖의 햇빛만 보고 있었다. 식탁까지 가져가 버렸다. 방바닥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왜 이리 처량해 보여 마음까지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결혼 생활할 때 애기가 어려 잠이 부족한 전처였다. 아침잠이 많은 것을 알기에 그냥 당분간 푹 자라고 했다.



아침을 거르고 출근을 하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오늘 밥이라도 있을까’


냉장고를 열어보았는데 나의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냉장고에 넣어둔 게 있었다. 이혼 시작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이 나의 생일은 가을이다. 지금도 이혼 언제 했는지 묻는다면 가을이라는 것과 나의 나이 37세는 영원히 기억하며 살지 싶다.


짐을 정리하여 일부분 가지고 나갔어도 냉장도, 에어컨, 티브이는 그냥 두고 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모두 다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나를 생각해서 그냥 둔 것이라 했다. 급히 이사 장소를 알아본 것 같다. 원룸에 필요한 물건들이 있어 두고 갔다.


초기에는 몰랐지만 딸 때문에 한 번씩 볼 때 이런저런 이야기로 알게 되었다. 회사는 가긴 가야 했고 먹기 싫지만 미역국에 밥이라도 한 숟가락 말아서 먹었다. 입을 벌려 밀어 넣은 후 대충 먹고 출근 준비를 했다. 지금 이렇게 10년 전 글을 쓰고 있지만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차에 시동을 걸어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회사의 동료들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했다. 잠시 쉰다고 이야기해야 할지 아니면 이혼을 했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 중 결정을 못했다. 자동차 페달을 밟아 회사로 움직였다. 잠시 뒤 도착하여 사무실 문을 열고 늘 하던 식으로 인사를 했다.


컴퓨터를 켜고 잠시 앉은 뒤 동료들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었다. 가슴이 얼마나 콩닥 거리는지 한숨 내쉬고 난 뒤 나의 입에서 말하게 되었다.


“저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전처는 짐을 싸서 나갔습니다.”


다들 조용 해 지면서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몇 초간 서로 나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추가적으로 나의 입에서 한마디 더 하였다.


“사업에서 손을 떼겠으며 여기를 떠나겠습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한 듯 말을 다 해버렸다. 결정해야 할 것의 한 부분을 덜어낸 것처럼 아쉬움과 후회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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