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긴 시간
이혼 후 여행이라곤 해 본 적 없다. 일에 치여 삶 자체가 구속이다. 한 번쯤 주어지는 시간은 혼자 방콕으로 보냈다. 최근까지 그랬다. 이혼으로 보낸 시간이 10년을 넘겼다.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오직 일만 했더라면 나 자신을 이동시킬 이유가 없다. 현실은 현실이다. 어디론가 가고 싶어도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혼자 목적지 없는 곳을 가기가 쉽지 않다.
최근 직접 운전하여 춘천을 갔다. 3시간 운전으로 가장 긴 시간이다. 이번에는 버스 타고 간다. 버스 타는 시간은 3시 40분 쉽지 않다. 우선 운전하지 않아서 좋다. 그 시간 동안 무얼 하며 버틸지 생각해 보았다. 인생 살면서 가장 긴 시간 버스 타고 간다. 목적지는 춘천이다. 버스 안에서 잠잘까? 그것도 3시간 이상 못 할 짓이다. 차 안에서 긴 잠을 못 잔다. 책이라도 볼까? 독서 집중 20분 최대이다. 노트북으로 영화 볼까? 가장 잘 맞다. 중요한 건 노트북을 못 챙겼다.
버스 긴 시간 처음이라 그냥 가방에 책 한 권 넣어 가보기로 했다.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은 잘 흡수되기도 하지만 고민하게 되는 것도 있다. 아마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시간 속에 나를 가두는 일이다. 무료함이 가장 힘들다. 디지털미디어는 시간을 잊어버리게 한다. 미디어 사용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자는 것뿐이다. 3시간 동안 잠잘 수 있을까? 못 한다. 눈을 잠시 부칠순 있어도 긴 시간 자는 건 집에서 가능하다.
지금 브런치에 글 쓰는 시간도 버스 안이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이것마저 끝나버리면 인스타 잠시 들여다본다. 그 뒤 무엇하며 보내야 하나? 긴 시간 운전하며 와 본 거리지만 나를 가만히 태워준다. 어쩌면 나를 돌아보기엔 가장 좋다. 쉼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 이런 시간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진짜 하기 나름이다. 버스 여행으로 긴 시간 나를 내려놓게 한다. 이것이 참다운 삶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