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y Min kyung

어릴 적부터 존재로써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은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서 그대로 있었다. 자연해소 되지 않았다. 처리를 하지 못한 채 눌러두어서, 위험한 상태로 존재했다. 그리고 시간마다 경험하는 것들과 버무려져서 잘못된 생각으로 다시 굳어졌다. 그것이 사실이라 믿었다.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가 항상 옳았다. 그래야 모든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때때로 그땐 그랬잖아, 하고 엄마에게 하소연을 해도 그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택배나 매한가지였다. 그런 적도 없고 그러지도 않았다고 부인했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는 아니겠지. 하지만 수용이 없는 대화에서 좌절과 분노가 떠올라 몸을 덮쳤다. 어김없이 몸이 아팠다. 정기적으로 소화가 안 되고, 두통이 찾아오고, 중요한 행사를 앞두면 나는 항상 곤란한 상황과 마주했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지만, 몸에 쌓였던 감정폐기물들은 언제나 몸을 괴롭혔다. 결혼식을 앞두고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스트레스가 되어 취약한 몸을 마구 두드렸다. 결혼식 사진에 나는 세상 썩은 미소를 하고 있다. 그날도 아팠다. 시집가서 첫 명절에도 몸살이 나서 누워있어야 했다. 시댁 어른들이 심하게 핀잔을 주지는 않으셨지만 '지금은 아플 때가 아닌데'라는 말도 들었다. 큰 아이 돐잔치 전날에도 아팠다. 스트레스를 조금만 받거나 큰 일을 앞에 두면 무조건 아팠다. 거슬러 생각해 보면 시험을 앞두고도 항상 컨디션은 좋지 못했다.



큰 아이가 돌을 지난 정도에 우울증이 다시 찾아왔다. 산후우울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병은 과연 무엇인가 묻고 싶었다. 짚이는 원인이 있기에 정신과를 찾아갔다. 남편은 외국으로 발령 난 상황이라 큰맘 먹고 시간을 내어 상담을 받았다. 의사가 아니라 점쟁이 같았다. 엄마의 존재를 '악'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부모라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해결이 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깊은 치료는 횟수도, 비용도, 시간도 조건이 맞아야 했다.


결혼 생활, 타국에서의 삶, 육아를 하면서 조금씩 배워나갔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가족과 자주 만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었다. 일 년에 한 번만 가족을 만났다. 의사가 말한 대로 떨어져 지낼 수 있었다.




가족 문제, 지난 일들은 그냥 묻어도 된다고 생각한 채로 살았다. 그리고 자주 보지 않으니 스트레스도 줄었다. 하지만 2019년쯤부터 엄마가 가끔 이상한 말로 나의 감정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엄마라면 딸이 부지런히 사는 모습을 응원해 줘야 하는데 가끔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했다. "너는 돈 버는 재주도 없으면서 뭘 그리 부지런히 산다고 하냐?"는 등, 정상적인 사고의 범주에서 벗어난 말을 하곤 했다. 나의 에고는 미친 듯이 또 반응하고 있었다. 그다음 해에 엄마는 치매진단을 받았다. 아직도 본인은 멀쩡하다고 생각하지만 치매는 진행 중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에겐 딸이 둘 있는데, 하나는 엄마랑 너무 안 맞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엄마는 공감도 없고 남의 입장 따위는 고려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다. 나의 동생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은 그런 면이 있고,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랑 잘 맞는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가 언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두렵다고 했다.


엄마가 이런 사람인 것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같은 엄마 아래 두 딸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지속적으로 말했던 것을 조금은 이해하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겉으로는 타인을 수용하고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옳다고 생각하지만 강박적 두려움이 있고 자기 자신의 고집을 절대 꺾지 않는, 그래서 타인과 지내기 힘든 사람이 우리 엄마다.


이젠 타인과의 관계와 대화가 힘든 것이 자기 자신과 지내기 힘듬인 것을 안다. 타인을 향해하는 막말도 자신을 향한 말인 것을 안다. 그렇게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장 여유롭고 행복해야 하는 그녀의 노년이 내 눈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다.



이 글은 내 감정을 드러내서 해소가 되기도 하지만 비슷한 문제를 가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쓴다. 가족안의 사람과 해소와 해결이 안 될때도 있다. 가까운 이에게 털어놔도 해결을 해 주지 못할 때가 있다. 혹시 비스무리 한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해결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묻어둔다고, 삼킨다고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럼 다음 단계 질문은 어떻게? 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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