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 간절히 원했던 것은 나를 알아달라는 것을 원했던 것 같다. 그땐 아이였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랐고 수동적으로 상황을 맞이했다. 상황의 불안을 온몸으로 느꼈던 좋지 않은 기억만 난다.
부모님은 그냥저냥 평범한 서민이었다. 40년대 후반 50년대 생들은 한국이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그들도 고생을 같이 한 세대이다. 나도 말로만 듣고 영상으로만 봤던 시대를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가난을 겪었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만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그냥 아버지나 엄마를 보면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고생도 많았고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남는 것 이외엔 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만큼 고되 보였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엄마는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매 학기 초 가정 조사서엔 엄마도 고등학교 졸업이라 되어있어서, 진실을 알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대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문제는 학력이 아니었다. 아주 나중까지도 우리 엄마가 가진 위생개념의 문제를 잘 몰랐다. 아무리 쓸고 닦고 해도 집이나 엄마 일터인 미용실에는 퀴퀴한 냄새가 나고 한쪽에는 거미줄이 있는 풍경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냥 불쾌하고 이상할 따름이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비교군이 없었으니까.
엄마가 만들어낸 공간은 예전 외가와 비슷했다. 벽돌을 쌓아 만든 창고 같은 곳에 기분 나쁜 냄새도 나고, 당시에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던 외가는 방문하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매일 쓸고 닦고 청소하고는 있었지만 청소를 해서 깨끗한 상태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늘 정리되지 않은 그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주로 하셨다. 음식물 쓰레기, 베란다 정리, 주기적으로 나오는 쓰레기들, 집에 쌓여 있는 필요 없는 물건들 정리는 아버지 몫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년이 지나도 엄마는 아버지가 해 놓은 정리에서 하나도 바꾸지 못했다. 엄마는 쓸고 닦는 활동을 매일 하지만 깔끔한 정리는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제는 안다.
나의 존재를 알아봐 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애초부터 아이를 낳고 자식을 입히고 먹이고 교육을 시킨다는 정도까지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인간 '나'를 바라봐 줄 수 있는 여유도 없었고 존재를 본다는 의미를 몰랐다. 나는 단지 눈을 보고, 오늘은 무엇을 했고, 넌 이것을 잘할 줄 아는구나 이런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경험들은 많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더이상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 지 모른다고도 했다.
현재와 마주하고, 인간 안에 있는 존재와 마주하는 기쁨을 몰랐던 것이다. 나는 너를 나의 관심에 두고 있다. 그래서 사랑한다. 그래, 그게 사랑이라고 느끼고 싶었고, 그랬다면 그 작은 존재는 얼마나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행복이 별 건가. 나를 알아주는, 정말 큰 존재들이 있으면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데. 부모가 해 주어야 하는 사랑은 이런 사랑이라고 한동안 생각했었다. 그 사랑을 왜 주지않았냐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표현하기란 불가능이었고, 그걸 알아챌 수 있었던 사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