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인,

무엇이든 상대적이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

by Min kyung

7월 중 가족 여행을 발리로 다녀왔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여기가 내 집이 있는 곳인가'하고 친숙하게 느낀다. 발리에서는 먹는 것, 즐길 것으로 즐거웠고 오랜만에 가족 여행이라 기분도 좋았다. 제3국을 갔다가 집에 오는 길은 한국에서 돌아올 때 보다 덜 반 가웠다.


한국, 진짜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돌아올 땐 우리 집이 있는 이곳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사실 한국방문은 친정이건 시댁이건 마음 편하게 있을 곳이 없다. 아이들도 다 자랐고, 거의 성인이 다 된 등치들이 움직이는 공간은 이동도 불편하고 잠시 방분도 맘이 편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고생을 좀 한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처럼 개인 핸드폰, 카드, 자주 쓰는 어플 등이 세팅되어 있지 않기에 내 나라이긴 한데, 어색함이 며칠 가야 한다.



한국에서 내 공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 한 채, 그것에 대한 갈망을 하면서 집에 오는 길에는 다 읽어내지도 못하는 간판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평소엔 이것들이 교통체증의 원인이라 탓했던, 개미행렬 같은 오토바이 무리들도 얼마나 정겨운 지 모른다. 무질서 속에 질서를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것이 마치 원래 내가 있었던 것으로 돌아온 듯한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즐겁게 놀다 온 발리에서 오는 길에는 그게 그렇게 반갑지도, 그렇게 안전하지도 않은 느낌을 준 적이 있었다. 역시 고생을 하고 돌아와야 하나



해외체류를 장기간 했을 때 주어지는 혜택이 있다. 한국에서 경쟁을 하는 이들은 이에 부당한 대우라면 불편한 기색을 내는 특례제도이다. 다음 해 대학을 가는 아이는 이렇게 입시를 치렀다.


더욱 불편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좋은 학교에 가는 건 문제가 안 된다고 아주 쉽게들 말한다. 특별제도이기 때문에 혜택을 보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도 엄마도 초, 중, 고 12년 혹은 13년 최종 목표를 대학진학에 두고 달린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올 시점은 그 기간의 성적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많은 학생들이 전부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것은 말이냐 방귀냐는 식으로 앞뒤가 안 맞다. 그렇다면 원하는 곳으로 진학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기서 비교와 함께 상대적이다라는 개념이 나온다. 어느 집 애는 SKY 갔는데, 그걸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그 정도는 아니라도 인서울 학교를 갔는데, 그 마저도 힘들었던 사람들은 인서울이라도 부러워 마음이 찢어지기도 한다. 종종 먼저 치러본 사람들에 따르면 '입시를 해 봐야 그 마음을 안다'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좋은 학교 갔다고 자랑하고, 남모르게 가슴 치며 슬퍼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모두 상대적이다. 혹은 절대적인 기준에 맞춰 평가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자식이 낸 성과가 좋으면 뿌듯하지 않을까. 자식이 잘 되면 기쁘지 않을까. 그건 당연한 말이겠지만, 혹여 기쁜 일이 오는 순서가 다를 수 도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어느 자식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갈 때 기쁠 수 도 있겠지만, 꽃을 피울 시기가 좀 늦은 자식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합격, 불합격으로 그것을 판가름하겠지만 나중엔 또 다른 기준으로 본인들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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