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이해하기 위하여

by Min kyung


결혼을 할 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나의 조건을 현실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공정한 거니까. 당장 소득이 많지는 않아도 열심히 모으면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엔 2층짜리 빌라에 2층엔 주인집, 1층엔 방 2개에 우리 가족 4인이 살았다.



지금 남편을 소개로 만났다. 무엇보다도 그의 검소한 생활습관이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인생은 한 방이다, 돈이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에 질려 있었다. 엄마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 결혼을 서두른다는 것과 그의 집이 크게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밤마다 나에게 여자란 결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교했다. 여자 쪽이 기울어도 재력이 받침이 되는 집으로 시집가야 한다는 말을 매일 밤 했다. 심하게 반대하는 것에 어이가 없고 오히려 황당했다. 내가 사는 집을 보면 한숨이 나오는데 부모가 그런 말을 한다니. 그 심보가 속물처럼 보였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여유롭게 인생을 시작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살아도 내가 살고, 그때 내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는 잘 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엄마는 10년만 살다 보면 다른 친구들이 너보다 더 잘 살 거라고 했다. 그때 분명히 너는 후회할 거라는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말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부모님은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계획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나는 나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말대로 우리 집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한 사람을 만나려고 기다렸다면 나는 결혼할 수 있었을까?


결혼을 하려고 보니 나에게는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그래서 혼수를 빚으로 해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인 여유 있는 집안을 선호한 우리 부모님도 그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혼 후 빚은 모두 갚았고, 그 후로는 열심히 계획하고 모은 덕에 내 생각대로 살고 있고, 엄마의 저주는 아무런 효력도 가치도 없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미워도 했다. 때로는 이해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어느 해에는 도저히 갈등을 풀 수 없을 것 같아 병원에 가서 성격검사나 상담을 받아보려고 했다. 이 때는 엄마가 치매 판정을 받은 이후라, 나의 요구가 한 발 늦은 듯했다. 아픈 엄마에게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인데,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시간이 많을 때 엄마를 구슬려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내가 엄마를 미워하는 이유가 단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엄마는 초등학교 졸업 무렵 다른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고 했다. 그 시절엔 여자 아이를 고등교육 시키지 않고 남의 집살이를 보내는 경우가 꽤 있었나 보다. 학교 교장선생님이 와서 외조부를 설득했지만, 끝내 엄마를 학교 식당 허드렛일 하는 곳에 보냈다고 했다. 식당을 맡아하시던 분의 도움을 받고, 그 식구들이 엄마를 막내식구 대하듯 잘해 줬다고 한다. 몇 해 뒤 엄마는 사촌의 집에 보내졌는데, 그 집 근처에 미용실을 지나다가 엄마는 걸음을 멈추었다고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용실 주인의 모습을 보고 얼어붙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미용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도 지원을 해 줄 수 없는 마당에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용실 주인장이 소개해 준 직업훈련학교 선생님의 집에서도 3-4년을 살게 된다. 그러다 미용 보조를 구하는 시내 미용실에 취직하게 되면서 그 집을 나왔다고 한다.




단 몇 줄로 몇 년을 요약했지만 한 단어로는 남의 집살이를 전전하며 혼자 살아나갔다는 내용이 전부다.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녀가 부모의 보호를 받은 것은 짧은 유년시절이 전부다. 그 안에 중학교 진학을 반대한 외조부에 대한 원망, 다른 형제들에 대한 질투,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 타인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에겐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도 얻어낼 여지가 없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고집했을 뿐이다. 아이였으니까. 엄마도 모르는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나의 언어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이해는 미움이 최고조에 이르고 나서 이루어졌다. 충분히 미워하고 나면 지치기도 한다. 미워하기를 포기한다.



엄마는 엄마만의 논리로 세상을 살았다. 나는 이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의 가치관을 이해해 보려는 겸손도 없었다. 엄마 삶에 대한 연민도 없었다. 엄마의 판단과 가치관이 틀렸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가진 가치와 다르기 때문에 엄마가 틀렸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중요한 순간에 내가 엄마 말을 듣고 판단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내가 성장하는 순간에 정체되어 있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를 이해하려고 해 보았지만,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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