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고 싶다

by Min kyung

남편은 한때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은퇴하면 나를 찾지 마라."

그래, 당신을 찾지 말아 주마라고 다짐도 했다. 그것이 진심인 줄 알았다.

물론 50% 정도는 진심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 부름과 가정에서, 또는 한국에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그의 책임이 있는 일이 있으니까. 그가 해야 할 일, 책임이 많아지니까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젠 내가 그 말을 하고 싶다. "나를 찾지 마라. 나는 졸업하고 싶다."




20년을 엄마, 아내로 살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순간도 그들에게 소홀하지 않았다. 나름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충성을 다했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것도 오랜 기간 수련이라면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문제는 종종 집안 수련이 그리 중요도가 높게 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해 주는 지지, 보조를 받고 모두 학교로 직장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나는 준비를 해 주고 돌봐준다. 심지어 남편에게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를 외칠 수 있는 대나무 숲 역할도 해 준다. 경청은 나의 핵무기이니까. 아주 진심으로 들어주고, 회사의 기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을 신뢰도 있으니까 나에겐 말해도 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가끔 현타가 온다. 지금 여긴 어디? 나는 어느 선까지 서포트를 해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내가 지치지 않을까. 이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인데. 그 일의 중요도도 줄어들고 그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호해진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내 이름을 내밀지 못하고 오랜 기간을 살았다. 내가 어떤 일이든 시도해 보려고 할 때 남편은 나의 시도를 찬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상 단서가 붙었다. "애들일이나 집안일 모두 제대로 잘 돌아가게 해 놓고 해."라고.


가부장적인 남편이 말하는 이 말의 뜻은 알지만 진심으로 한 번 해 보기를 바란다는 말은 뱉기가 그리도 힘드나.






큰 아이는 3월에 대학 신입생이다. 고등학생을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유인이 된다. 아이를 바라보는 나도 마음으로 놔줘야 하는 걸까. 작은 아이는 아이패드를 학교에 가져갈 때마다 학교에 놔두고 온다. 한국이 안전한 나라라고 하는데,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는 자기 물건 안 챙기면 본인 잘못이다. 무조건 조심, 손에서 놓지 말기가 여기서 처음 배운 행동지침이다. 애들이라 그런지 개념이 없다. 본인의 귀중품을 어째서 챙기지 않는 건지 누가 설명 좀 해 주면 좋겠다. 이해하고 싶다.



나보다 오래 사신 엄마나 어머님이 아직 집안일을 챙기시는 것을 보면 한 번 주어진 책임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것인가 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안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하루를 종종거리는 인간인데, 그들 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인생에서 좀 비켜주면 좋겠다. 애들은 다 그래요라고 누군가 말해주면 좋겠지만, 요즘은 속에서만 보글보글한다.


그래서 목표는 한 인간으로 독립적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받으며 집안에서 하는 일-가사노동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신성하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살 수 있는 인간이 되어 보고 싶다. 이게 요즘 에고와 싸워 얻는 결심이다. 스스로 살 수 있는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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