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하지 못하면 재도전
안 맞다. 어떻게 안 맞아도 1도 안 맞을 수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그 몸에서 나왔다면, 우리가 가족이라면, 어느 정도는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안 맞다는 것이 이제와서는 동등하게 너와 내가 공통된 부분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도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때에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줄만 알았다. 나는 공감도 잘 안 되고, "그래야만 하는" 사실에 꼭 그래야만 하는지 반문이 들었다. 그래야만 당연하고, 그래야만 사회적인 통념에 적합하게 사는 것이라면 나는 항상 틀린 답을 내놓는 사람, 왜 안되냐고 묻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다가 놔 버렸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도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
이게 겉으로 볼 때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늙어가는 부모님을 애틋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다양하듯 아닐 수도 있다. 그럼 난 이상적인 인간이 아닌가 보지.
우리 엄마는 자존감도 낮고, 자신의 의지가 약하고, 자아상도 부정적이다. 이런 약한 부모가 자식을 자신이 의존할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동생은 엄마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고 이런 부모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이건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엄마에 대한 연민이 너무 강해서인지 자신의 도리를 강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논리적으로 설명을 들을 수 없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들은 너무 많았다. 나는 논리적인 근거가 없는 강요나 설득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동생은 예민한 성격이고, 자신이 모든 것을 맡아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강하다. 물론 자신의 삶에서는 훌륭하다. 하지만 때론 이런 태도가 다른 이들을 무력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언제쯤이나 알 수 있을까. 알아내긴 할까.
강한 책임감, 자기 효능감 혹은 완벽함, 모두 개인의 삶에서는 손색이 없는 자질이지만 가까운 이들은 바보 만들기 딱 좋은 자질이다. '너를 믿을 수 없어'라는 메시지를 내뿜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내 가치를 다할 때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라 위와 같은 가족과 상극이었다. 왜 나는 동생과 함께 있으면 그 애가 내놓는 정답을 비켜가는 사람일까 생각했다. 그 애가 정답이 아닌데도, 본인이 너무나 강하게 믿고 있는 정답이 진짜 정답일 것만 같은 프로그래밍이 너무 오랜 시간 되어 있었다. 거기다 엄마가 동조했고.
그 그물에서 벗어나야겠다 생각하고 맘 편하게 지낸다. 그들과는 상관없는 삶을, 온전히 내 삶을 살고 있다.
웃긴 건, 내가 제껴버렸던 상황을 다른 곳에서 마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그 애와 같은 누군가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완벽해야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정답인 사람. 나보다 덜 살았는데, 더 살
아본 것처럼 조언하고 있는 사람.
1차에서 실패하고 제쳐두었던 매트릭스가 실패하면 재도전하라고 내주는 패자부활전처럼 나타났다. 잘 이겨내어야만 또 다른 과제를 받을 수 있는데. 사랑, 용서, 친절의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사실 힘들었다. 나의 영역을 다시 침범받은 느낌이었다. 본인은 예민한 레이다로 다른 사람의 언행까지 잘잘못을 논하면서 자신의 말은 조언이라는, 너 잘 되라는 포장을 하고 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가. 왜 자신은 항상 옳다는 전제를 깔고 행동을 하는가. 사실은 안다.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다른 이에게 어떤 기분을 들게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옳음의 옷을 입고, 눈을 가리고 다른 이를 보면 모두 X 자국이 가득할 테니까. 그래, 이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해하고 용서할 수도 있겠다. 자신을 들여다볼 렌즈를 마련하지 못했나 보다.
재도전 중이다. 극복하지 못한 게임에 첨에는 힘들다고 징징대고 있었지만, 나를 들여다본다. 나도 때로는 에고에 말려서 정신도 못 차리기도 한다. 그러나 바른 길로 갈 힘이 있다. 그냥 내버려 두라. 지적질에 두드러기가 난다. 그냥 조용히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나를 버려두라. 내가 너의 인생에 중요하지 않지 않나. 혹여 빗나가더라도 잠시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알 게 뭐냐. 그러다가 다시 마음이 이끄는 길로 돌아올 것이다. 그게 나야. 내 길은 내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