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EBS부모 시절부터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면 즐겨보았기에 그녀의 명쾌함이 좋다. 지나간 회차에서 노부부와 장애인 첫째 아들, 부모에게 막말하는 둘째 아들의 사연을 본 적이 있다. 부모에게 욕설을 하거나, 폭력적인 태도는 도의에 어긋난 것이 맞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아이가 혼자, 자연스럽게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나 하는 것이다.
당연히 무언가 인과가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대부분 수용하고 감싸 안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태도와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음을 대놓고 말했다. 아들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질타하고 그러지 말라고 지시, 타박하는 말이 대화의 전부였다. 그들의 대화는 집에 언제 들어오냐, 왜 늦게 오냐, 돈도 못 벌면서 돈만 쓰고 다니는 거냐 등의 지적로으 시작해서 아들의 고성과 욕설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전국에 얼굴과 개인사를 낱낱이 밝힐 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출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나의 부모와 비슷한 사람을 보았기에 답답한 가슴에서 내뿜는 고통을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소리가 높아지는 세월이 보이는 듯했다. 알고 보니 둘째 아들은 암을 앓아서 수술 후 걸을 수는 있지만, 하반신이 마비되는 증상을 평생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에는 학교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부모는 그만큼 힘들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고, 아이는 부모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그때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한데, 그만큼이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몰랐다. 모른다.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는 고통을 호소하고 보호받고 싶어 했는데, 부모가 그만큼을 알아주지 못한다면 부모에 대해 실망이 생긴다. '부모이지만 내가 기대어 살거나, 마음을 열고 대화는 글렀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식도 사람이고, 부모와는 또 다른 인격체라는 존중이 없으면, 그저 자신들이 낳아놓은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실수를 하게 된다. 무지하다. 모른다. 나를 알아주는 이들도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더 엇나가기 시작하고 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온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만 하는 사람들', 고성과 욕설하는 태도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어떤 마음인지 알겠고, 그들도 몰라서 그랬으니 무지한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무지하면서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자신의 결백, 자신은 열심히 살았던 잘못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다고(출연자 어머니와 내 어머니가 오버랩되어). 물론 거기다 오은영 박사는 "당신의 결백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정신 차리세요!"라고 단호하게 꾸짖었다. 이런 시원함과 청량한 맛에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없다면 자신도 항상 옳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 어머니도 무조건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단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용감하고 당당하다. 이젠 그녀를 용서한다. 모르니까 그랬겠지, 자식인 내가 알려줄 수도 없고 안타깝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마무리될 것이다. 자식의 감정은 읽을 수도 없고, 어떤 것도 알아챌 수 없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알아채지 못하면 내 앞에 있는 행복도 그냥 흘려보낸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모른다.
오늘도 엄마와 통화를 했다. 마음에서 모든 걸 내려놓은 다음에는 엄마와 대화가 한결 편해졌다. 아주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는 엄마말에 감탄해 주었다. 모두 당신이 맞는 말을 하고 대단한 생각이라고 해 주었다. 그랬더니 감탄을 그만하란다. 그나마도 해 줄 가치가 없었을까. 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엄마는 5분 통화에 같은 질문을 3번 한다(엄마는 치매 판정을 받은 지 4년째다). 괜찮다. 그냥 심리적 안정감만 주면 된다. 모르는 것이 괜찮은 사람이 있고, 난 안 괜찮다. 괜찮은 사람도 용서받아야 한다고 했으니, 나는 기꺼이 용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