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물었다. 그리고 남편이 제안했다. 대화를 글로 쓰면 된다고. 제안했다는 말도 쓰라했으니, 나는 그대가 하라는 대로 했소.
나는 지방에 어는 대학 영문과를 나와 대형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 결혼하고, 첫 아이 출산 전까지, 4년간 일하고 경력이 없다. 공식적으로 어느 기관에 취직을 한 기록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학생을 가르치거나 한 적은 드문드문 있다.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왜 버리지 못할까. 그 일로 인해 나도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일은 해야겠다고 기회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내 앞에는 육아가 먼저였고, 육아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고 생각할 즈음에,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핵했다. 반 강제 독립을 한 셈이다. 그럼 육아가 끝나느냐, 둘째는 중3이다. 오랫동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제는 육아라는 개념도 없고, 클 만큼 컸지만 시기가 중요한 만큼 신경 써 줘야 할 일들이 잔잔히 있다.
큰 아이가 대학을 가고, 둘째 아이도 대학을 가기까지 3년이 남았다. 나도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일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이 있고, 여기 좁은 동네에서 영어는 수요가 많긴 하지만 나의 색깔도 분명치 않고, 보이지 않는 판단들을 두려워했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3월에 일을 다시 시작했다. 나 혼자 수업을 계획하고, 내가 오랫동안 수업을 받고, 공부해 오던 방식으로 정했다. 영어란, 한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종목이기도 하고, 잘하고 싶다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민, 유학, 선행 모두 영어와 얽혀있지 않을까. 무조선 잘해야 하고, 잘하고 싶을 테니까. 영어공부 왜 하세요?라는 질문에 '여행 가서 입이라도 떼고 싶어요',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 말이라도 해 보려고요.'라는 대답이 많았다.
영어를 가르친다는 일이 왜 나에게 의미가 있나?라고 남편이 물었다.
첫째로는 즐겁다.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영어는 조각조각, 단어들만이 주는 재미도 있다. 정확한 의미전달도 가능하다. 하지만 행과 행 사이에 의미와 관계를 알아내면 즐거움이 두 배가 된다. 일반 회화에서도, 문학에서도 문장관계의 의미를 알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 번째는 가르친다는 행위가 주는 보람에 관한 것이다. 솔직히 지금은 한 수업을 위해 하루 4-5시간을 쓴다. 머릿속 세계가 눈앞에서 현실화될 때, 그것을 거부감 없이 해 보려고 하는 학생과 그들이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내가 생각한 것이 그들에게도 전달이 되었구나 싶을 때 준비할 때 느끼던 불안과 걱정은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 있다. 내가 나의 가치를 보여줬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기쁘다.
세 번째는 물질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도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하고, 수강료가 비싸지 않다. 나의 시간, 노력에 대한 수고비정도라 생각한다. 그래도 숫자들이 통장에 모일 때 기쁘다.
영어도 언어이기 때문에 상대방과 소통으로 의미가 통해야 쓸모가 있다. 단지 시험과목, 점수를 내기 위한 영어는 절름발이 영어다. 그러면 언어는 말로 뱉아야 한다. 학습방법도 뱉아야, 입으로 나와야 어딜 가든 써먹을 수 있다. 머리에서 문법교정 후에 나오는 영어는 그냥 안타깝다. 제2 외국어이기에 장벽이 는 것도 사실이고, 그럼 아주 어릴 때부터 영유 보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해한다. 언어인데, 학습과 습득과 연습의 시간을 거치기란 너무 오랜 세월을 요구하긴 한다. 하지만 학습의 과정은 왜 들여다보지 않나.
학교 환경이 많이 개선되어서 회화수업,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수업으로 변화하고 있긴 하겠지만 언어란 배경, 문화, 환경이다. 그리고 모국어로 모든 사고 과정이 고정된 뇌를 조금씩 길게 학습하는 교육과정을 우리 모두 거치지 않았나?
지속해야 하는 학습을 하는 조건은 즐거움이다. 재미나야 할 수 있다. 지루하면 뭔가 펼쳐볼 힘이 전혀 안 난다. 아, 해야 하긴 하는데, 하면서 손만 움직이는 학습, 당연히 능률은 없다.
무조건 뱉아야 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수하면서 는다, 해 놓고는 문법이 여기가 틀렸네, 관사가 들어가야 맞네, 아니네, 잣대는 좀 치워야 한다. 어느 누가 그랬다. 영어 잘할 수 있다면, 미국에 사는 거지가 부럽다고. 영어를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열망을 반영했다고 생각하자. 안타깝지만. 점수를 내기 위한 영어도 필요하다. 그건 그거고, 도구를 써먹으려면 칼을 갈고 연마해야 하지 않나. 연습 없이 되나. 그럼 영어라는 것이 발음은 어디를 거치는지, 소리는 어떻게 내는 지를 배우면 된다. 그러고 나서 발음을 굴린다의 관점이 아니라 원래 쓰던 이들이 쓰는 것처럼 한 번 내어본다고 생각하고 발음하자. 알아듣게 말을 해야지, 그건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할 때라고 바꾸어 생각해도 같지 않겠나.
잘하기 위한 지루함은 좀 참아야 실력이 는다. 매일이 어떻게 재미만 있고 보람차겠는가. 연습하다 보면 지루할 때도 있고, 이 짓은 왜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의 지루함을 견디면 내일 조금 더 나은 나를 발견한다. 조금 더 잘 되네, 지금 안 된다, 그래도 한다 = 내일 조금 더 나아간다는 공식인가? 스스로 터득해야 오늘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다. 신나지 않나? 내일 더 잘 한대.
챗 GPT, 통역 어플이 잘 나와서 영어공부 안 해도 되나? 하는 질문들을 많이 가지는데, 머릿속에 넣고 공부하면 선 그걸 가져가지 못한다. 고대적 선생님들의 잔소리 중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다 써먹는다. 내 기술이고, 나의 자산인데 그걸 안 하려고만 피하지 않으면 좋겠다.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나는 내 직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험 중이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 중에, 너 그거 잘한다, 고 들은 일이 영어를 말하는 것과 가르쳐야 하는 일이다. 나를 연습시키는 과정도 즐겁지만 나를 따라와 주는 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이로써 나는 나와 만나는 사람들을 교체시키고 있다. 노는 물이 달라졌다고 하면 가장 빠른 이해일 것이다. 그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자극을 수용할 줄 안다. 반응이 유연하다. 약간의 여유를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라 더욱 감사하다. 그리고 한 발 떼어보길 참으로 잘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