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지키자-2
썰을 풀다 보니 정작 하고자 하는 말을 하지도 못했다. 물론 그들이 볼 때 나는 세상 나쁜 년이겠지만, 이런 얘기 지인들에게 늘어놓기도 이제는 창피하고, 나만 유별난고 잘난 척하는 것 같아 거두려고 했었다. 그리고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과거 문제에 말리면 흔들리기는 당연하더라. 약간의 필터를 바꾸면 두 가지 얘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일은, 정말 내가 그만큼의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을 한 건지 안 한건지도 혼란스럽다.
오은영 박사가 이렇게 미디어에 흔하게 나오기도 전에 EBS '부모'부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도 열심히 쳥겨봤다, 나의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그리고 요즘 같이 자신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시대에 정신과 상담을 신경 써서 보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도대체 보지도 않는 건지, 뭐 그건 그네들 문제이니 나도 선은 지키련다.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가 있다. 4년 전에 발병했고, 엄마는 부산에, 나는 해외에 산지 너무 오래됐고, 엄마를 돌보려면 서울에 살고 있는 동생이 엄마랑 함께 살아야 했다. 작년 가을에 드디어 생의 짝꿍인 그들이(내가 볼 땐 그들이 나와 엄마보다는 잘 맞는다. 둘이 있으면 행복해 보인다) 함께 살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이었고,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전화통화도 잘 안 되는 상황들이 계속되었고, 잘 있는 그들을 보며, 잘 있으니 그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은 동생을 향한 미움이었다. 엄마 분신 같은 그 존재를 보면서 그리고 존중과 수용은 없는 그 존재에게 타인이었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몸서리를 쳤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글쎄, 그녀 스스로도 어떤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나를 언니라고 부른 것은 40년 나이를 먹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무식하게 전화로 대판 싸우고 나서. 이게 무슨...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동생은 아마도 엄마의 입장이 되어있었나 보다. 지금은 내가 추정할 수 있는 한계다. 사실 잘 모르겠지만, 띄어쓰기 하나도 없는 카톡메시지는 어떤 느낌을 주나? 그녀와 대화할 때면 답답하다. 마흔 넘은 동생에게 메시지가 이게 뭐냐고 하는 게, 가능한가.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 사는 세상에 나는 그녀의 엄마도 아닌 것을.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본인이 다 맞다고 생각하며 사는 분에게 그런 충고란 반사하는 듯한 태도,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 있으면 좀 같이 공유 좀 해줘 봐요. 위로 좀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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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튼 요는 엄마에게 보내는 돈, 이제는 보낼 필요도 없고, 한국에도 올 필요가 없다는 문장을 띄어 쓰지 않은 채로 받았다. 그리고 나의 전화는 받지 않겠다는 상태로 '연결을 할 수 없어'라고 넘어간다. 전화를 자주 하지 않아도 엄마에게, 돈을 보내도 엄마에게 보낸 것이지, 본인과 무관하다. 물론 감정은 느낄 수 있겠지. 그런 감정과 모든 판단은 본인의 발밑에 있다는 태도로 문장하나만을 남기고 본인은 숨어버렸다. 5살인가 싶다.
나의 목표는 이승에서 내가 할 도리는 다 한다, 과거는 모두 나의 몫이니 절대 꺼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단, 각자의 선은 지켜야 한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고나리질과 간섭질은 사절이다. 각자 인생사는 거지, 동생이 엄마의 필터를 쓰고 언니에게 네가 엄마에게 잘했니, 못 했니, 하고 나서 엄마한테 보내는 돈 끊어도 되고, 이제 한국도 안 와도 된다고 하는 건 도대체 어디서부터 못 배워서 그러는지, 나도 자식이 있는 부모인데, 부모 욕먹이는 자식행동이지 싶다.
감정을 빼려고 했는데.... 모든 전제는 나도 잘 한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나의 태도, 나의 행동, 때로는 해서는 안 되게, 때로는 매몰차게, 때로는 무관심하게 했을 테다. 나는 나를 보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부모가 혹은 모든 누군가가 지탄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런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게 그런 거다.
기다리고, 존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 자신이 너무 힘든 현실이라 그렇다고 추정해 본다. 자신이 여유 있고, 감정이 안정되면 그렇지 않을 텐데, 그렇게도 다른 이를 볶아대는 것은 스스로가 볶이고 있기 때문이겠지. 띄어쓰기 없는 카톡을 보내놓고 자신이 처단자가 된 것처럼 내가 너를 차단했다고 뿌듯해하는 것은 아직도 내면의 아이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겠지,라고 생각할 뿐이다. 머리통만 안 보이면 다 숨은 것처럼, 궁둥이 보임은 인지도 못하는 정도라고 가늠할 뿐이다. 그리고 더 이상 가늠하지도 않겠다. 그것도 지 인생인데, 그런다고 인생 잘 못 산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나름대로 잘 산다. 아주 잘 산다. 이승, 한 세상, 그냥 그대로 살아도 된다.
이러하다 해도, 저러하다 해도, 나를 위해 발생한 이 모든 일들에 감사하다. 내가 조금 더 성장하면, 삶은 언제나 과제를 던져준다. 나를 시험대에 올린다. 그리고 과제를 해결할 정도가 되었나를 시험해 본다. 내가 원래 가진 카르마대로 해결하면 다시 그 레벨의 시험을 가져다준다. 차원 높은 레벨로 해결하면 현실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건에 맞닥뜨렸을 때 잠시 당황하지만, 깊게 호흡을 하고 씩 웃는다. 올 게 왔군. 해결해 봅시다. 그리고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될 걸 알고 있어. 그리고 기다린다. 나는 문제보다 커져있고, 문제로 인해 성장할 수 있고,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본다. 잘하고 있구나. 다시 감사를 느낀다. 나를 위해 던져진 문제에 감사하고, 문제가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니까. 그들과의 인연은 잘 풀겠습니다. 다음 생엔 엮이지 않고, 더 좋은 인연을 만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