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일찍 진심을 전했더라면..
몇 년 전 의료사회복지사 수련생으로 근무할 때만큼 눈물을 펑펑 흘리게 했던 한 환자분이 있었다.
의료사회복지상담을 하면서 환자나 보호자분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 노력한다.
상담사가 울면, 내담자(상담을 받으러 온 대상자)는 자신의 상황이 정말 절망적이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로 상담에 임하려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감정을 참 잘 다스려왔는데 이 환자분과 가족들을 만나 뵈었던 당시에는 도저히 함께 울지 않을 수 없어 그냥 다 내려놓고 누워있는 환자분의 손등을 토닥거리며, 가족들과 함께 울었었다.
병원에서는 무연고 환자라며 걱정스러운 눈길이 한둘이 아니었다.
환자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병원의 직원들은 각자 맡은 바 업무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가족 없이 온 환자, 병원비를 납부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은 독거 환자와 같은 사회경제적 상황에 처한 -소위 무연고 환자- 환자가 내원하면 어김없이 사회복지실로 연락을 한다.
이 환자분은 병원의 그 어떤 직원보다도 더 빨리 외부 기관에서 사회복지실로 먼저 연락이 왔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유일한 지지체계였던 여동생과 함께 영양상태 불량, 탈수 증세가 심해서 타 병원에 먼저 갔고, 우리 병원으로 온 환자는 상태가 좀 더 심해 대학병원으로 옮기게 된 경우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되어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영양상태가 불량했고 세상과의 눈 맞춤이 어색해 보였다. 집은 경매에 넘어가기 직전인 상태로,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경매 평가원에 의해 자매는 발견이 되었다.
안심하기도 잠시,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은 환자와 분리 입원된 후 급격히 상황이 악화되어 사망하게 되어버렸고, 환자는 입원 기간 동안 갑작스러운 동생의 부고 소식에 심장이 터질 듯이 아프다며 펑펑 울었다.
담담하게 이 사실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의사 선생님께도 너무 큰 짐을 지어드린 건 아닌지 덩달아 내 맘이 아팠다.
환자의 부모님은 모두 사망한 지 오래, 유일한 가족 지지체계라 생각했던 동생의 사망으로 인해 주민센터를 통해 전혀 연락이 닿을 것 같지 않던 환자의 이모들과 연락이 닿았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게 된 계기는 환자 부모가 이혼한 이후 당뇨로 시력을 잃게 된 어머니를 홀로 두고 매정하게 환자 자매가 서울로 떠났고, 모친의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아 애를 먹은 기억이 이모들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행동을 했던 자매가 괘씸하여, 알아서 잘 살겠거니 맘의 문을 닫은 게 시초였다.
그렇게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았지, 이런 모습으로 한 명은 싸늘한 주검으로, 한 명은 온몸의 장기가 다 힘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로 돌아올 줄 몰랐다며 상담실을 먼저 찾은 이모가 망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환자를 바로 보러 가셔도 되겠습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이야기를 좀 나누고 올라갔으면 한다.' 하셨다.
환자가 이모들과 만나는 걸 원치 않는 것 또한 전달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 환자가 얘기한 내용과 조금 달랐다.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무겁게 환자의 이모들을 모시고 병실로 함께 향했다.
환자에게 먼저 가서 이모가 왔다 했더니, 보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고개를 저었다.
혼자가 되지 않게 하려고 오셨다고 했고, 얼굴이라도 보시라 했다.
이모와 이모부, 환자가 한평 남짓 되는 환자의 공간인 병원 침상의 커튼 안에 함께 섰다.
가족이기 때문에 미운 감정보다는 걱정하는 말이 앞섰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연락을 하지 그랬냐고.
환자는 자신만 미워하는 가족들이 무서워 연락하지 않았다 했다.
왜 네 엄마의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었냐고 이모는 물었다.
환자는 동생 손을 잡고 몇 번이나 몰래 갔었다고, 화장한 이후에 어머니 유골을 모셔둔 곳에도 몇 번이나 갔었다고, 잘해보자고 돈 벌러 떠난 길이 그렇게 끝이 날 줄 몰랐다고, 자신만 미워하는 가족들이 무서웠다고 말하며 펑펑 울었다.
이모는 그 말을 듣고 '아무도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라고,
그렇게 찾아올까 싶어 사실 화장한 유골을 뿌리지 못했다고 하며 펑펑 울었다.
누워있는 네 모습이 우리 큰언니랑 너무 많이 닮았다고 하며 또 펑펑 울었다.
10분 정도의 대화였다.
서로의 맘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맘을 공유할 수 있는 높은 벽을 허물지 않아 너무나 깊은 갈등의 골이 생겼고, 한 사람의 죽음으로 해체된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된 이 아니러니함을 앞에 두고 도저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얘기를 전해 들은 병원 의료진들도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리 기구한 운명이 어디 있냐고,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동생의 장례를 보러 외출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환자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대부분을 내가 있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이제 정말 혼자 남았음을 차갑게 알게 되는 순간 느끼는 극심한 외로움 끝에, 또 다른 가족들을 만났다.
이모가 정기적으로 오겠노라 약속하고 환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간 후 환자는 급격히 상태가 회복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병원비, 생활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환자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가족들은 그나마 너라도 이렇게 치료받을 수 있음에 다행감을 느끼는 동시에 현실이라는 벽을 직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 당시 참 열심히 울고, 열심히 고민했다.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참 많은 사람들은 만나게 되지만, 이렇게 저리게 아픈 사연이 가끔 나를 찾아오면 잠시 일을 멈추고 그분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이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말로 표현하지 못한 더 깊은 아픔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일이 다가오는 시간으로 시곗바늘이 향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