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지 Jul 26. 2022

4. 감정의 결핍은 빈자와 부자를 가려오지 않는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울타리가 있으신가요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여

잦은 잔병치레를 하고, 그런 일상적일 질병들이 모여 중증 질병으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병원이라는 문턱은 너무나도 높아 적기에 제대로 된 검사나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응급실로 실려온다면, 이미 손쓰기 어려워 각종 비급여 처치가 많이 들어가는 치료를 받게 되면서 고액의 진료비가 발생하고, 의료비로의 과한 지출은 가정 경제가 무너지게 하는 시발점이 된다.


그래서 '빈곤은 병을 부르고, 병은 다시 빈곤을 부르는 악순환'*이 무한 반복되며 안타깝게 가정이라는 안락한 조직이 무너지는 걸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이 것과는 또 조금 다른 얘기이다.




분명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대상자들이 다양한 건강의 위협요인을 자주 맞닥뜨리는 건 맞다.

하지만 요즘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분들을 뵈면, 신체적 건강보다도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를 호소하는 분이 많고, 이 분들을 상담하면서 느낀 건 감정의 결핍은 결코 빈자와 부자를 가려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신체적 문제에 대해서는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을 때 분명 가시적인 효과가 있다.

호전이 되고 완치 판정을 받기도 한다. 

계속적으로 자가 관리가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입원 기간 동안에 충분한 치료를 받았다면, 

그리고 퇴원 후 본인 건강을 스스로 심하게 해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신체적으로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적 문제는 조금 다르다. 

입원 중에 치료를 아무리 잘 받았더라도 퇴원하고 환자가 생활하는 공간과, 가정의 환경과 이런 부분들에 변화가 없다면 언제든지 정신과적 질병은 재발할 수 있다.


오히려 악화되어 재입원이 반복되는 환자를 많이 본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아주 부유하거나, 사회적으로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부모를 가진 사람도 다수 있다.


언제든지 적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에 놓여있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함이 정신과적 치료를 제대로 받고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진 못했다.(물론, 치료과정으로 원활히 진입하는 것에는 분명히 경제적 안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 하고 싶었던 말이다.


가족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질병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환자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

또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


환자가 치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가족들이 얼마나 잘 협조해 줄 수 있는지 그런 부분이 

단순히 경제적 안정보다도 훨씬 더 중요했던 점.


'모든 걸 돈으로 다 해결할 순 없다.'

라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말이 사실 현장에 있어보면 정말이라는 걸 느낀다.


경제적으로 열악하더라도 가족들이 현재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적인 태도로 도움을 요청하고, 스스로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을 찾는, 즉 건강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면, 사실 처음부터 정신과적인 문제로 병원을 방문할 일도 드물었을 거라 생각한다.


사회에서 위태하고 불안하게 각자의 위치를 유지하느라 정작 가족 내를 잘 돌보지 못했다면,

사회 악처럼 숨어 조용히 자라나는 가족 내 감정의 결핍이라는 게 점차 수술이 불가능한 크기의 암덩이처럼 커져서 결국 정신과적 질병으로 발현되어 가족 중 누군가 그 결핍의 상처로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정신과적 질병이 발현되는 기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연구 결과는 없지만

다양한 사유 중 분명 일차 가족들로부터 받는 온전한 사랑과 관심의 결핍이 포함될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감정의 결핍이 생기지 않도록 가족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감정의 결핍은 빈자와 부자를 가려오지 않는다는 걸 마음에 또 새기고.


끝없는 사랑으로 가족들을 대하는 것이 그 어떤 치료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환자분들과, 가족분들도 

사소한 것 같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이 걸 꼭 마음에 새겨주셨으면 좋겠다.





*김희연(2010). 저소득 취약계층 건강보호 방안 연구. 경기 연구원 기본연구

매거진의 이전글 3. 아무도 너를 미워한 적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