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휘게이야기
휘게(Hygge)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을 뜻하는 덴마크어인데,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어여쁜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
나는 오랫동안 내가 지나온 장소, 내가 만나온 사람, 내가 먹고, 느끼고, 봤던 일상과 직업을 넘나드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내왔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추억을 잊고싶지 않아서 부지런히 기록해왔던 것들이 수년간 쌓여서, 먼지가 쌓이지 않은 기록일 뿐 정말 오래된 기록들이 많아졌다.
이 정도 시점에서 이제 조금은 천천히, 뒤 돌아보면서 사진 한 장을 보아도 그 때 우리 무슨 얘기를 나누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그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우리만의 기록을 남겨보는 곳을 따로 만들어두고 싶어서, '휘게' 라고 부르고픈 새로운 장을 하나 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일이 정말 꾸밈없는 단순한 일일 수 있지만, 요즘은 그 단순하고 사소한 일도 여러가지 이유들로 힘들어지고 있는 참이라, 더더욱 휘게라는 이 단어가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조심스럽게 시작해보는 첫 이야기는,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만들고, 먹고, 먹었던 후기를 나누며 시작했던 우리의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오빠랑 내가 참 좋아하는 빵집 중 한 곳이 가로수길에 있는 브레드웜이라는 곳이다.
천천히, 천연 발효종을 이용해서 빵을 만들어내며 건강한 빵을 만들어내는 이 곳은,
처음 가로수길 모퉁이에서 작게 시작할 때부터 정말 친절한 사장님의 모습에 먼저 감동해 자주 방문했는데
빵이 건강한데 맛있을 수도 있구나, 해서 우리도 이사하고, 빵집도 이사했지만 여전히 시간을 내어 방문하는 곳 중 하나이다.
유독 나이들어가는 부모님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은 가게들을 찾기 힘든데
브레드웜 치아바타는 특히, 우리 엄마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빵이라 괜시리 방문할 때마다 제일먼저 손이 가는 빵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방문한만큼 빵에 정말 진심인 우리 오빠도 역시 기대에 져버리지 않게 다양한 빵들을 손에 집었고
단연코 치아바타는 그 중 1번이었다.
집에서 만들어먹는 샌드위치의 가장 좋은 점이라면
원하는 재료를 마음대로 고르고, 재료의 양도 마음껏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인데
그 점을 이백프로 활용했던, 오늘 우리의 식탁을 즐겁게 해주었던 간단하고도 맛났던 샌드위치는 바로 치아바타샌드위치였다.
신선한 로메인상추, 좋아하는 치즈, 토마토와 샌드위치 햄을 가득 넣고
치아바타 한 면에는 바질페스토를, 다른 한 쪽 면에는 꿀을 섞은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스를 발라서
비스듬히 썰어주면 나름대로 카페에서 봤던 샌드위치 비주얼이 나오는 듯 했다.
그리고 간단한 식사이더라도 끼니를 해결하는 그 시간과, 함께 먹는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으로 가장 아끼는 그릇들을 신경써서 골라 올려주면, 근사한 식탁에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입 와앙 하려는 순간 생각나는
빵을 정말 좋아하는 또 한사람. 우리 아빠.
한입 오물오물 하면서 오빠한테 이번 주 여행갈 때 치아바타 샌드위치 만들어서 갈까봐 했더니
역시 긍정의 아이콘 우리 오빠는 좋지! 하는 명쾌한 한마디로 기분을 더 좋게 해준다.
로메인 상추의 쓴 맛 없는 아삭함이 샌드위치를 씹을 수록 더욱 상큼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오이 하나 넣어도 맛있겠다는 오빠의 제안은 이번주 여행때 만들 샌드위치 재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라
빵 한쪽도 나눠먹을 수 있는 치아바타 샌드위치는
배도 든든, 마음도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이렇게 우리 부부의 아끼는 음식이 되었다.
당장 근무가 코앞이지만, 몇일 지나면 이 맛있는 샌드위치를 같이 먹어줄 가족들이 둘, 셋 쯤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이 설레는 마음이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어서인지, 멀리 떠나볼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건지 헷갈리면서도
기분 좋은 건. 역시 이런게 휘게라는 건가. 하고 행복한 혼란을 느끼며 오늘의 첫 휘게 글은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