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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Jul 18. 2022

3. 마음이 복잡할 땐, 보글보글 요리를

세번재 휘게이야기


중학생때부터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왜 그렇게 책상정리가 하고싶었는지 모른다.


안듣던 노래도 다 들어보고 싶고, 안보던 교양프로그램도 재밌는 것 같고

괜히 다이어리를 꺼내서 1월부터 12월까지 스케쥴 정리도 다시 하고 싶고.


뭔가 중요한, 잘 해내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그 일에 대해서는 잠시 눈을 감고, 딴청을 피웠던 것 같다.


학생 때는, 나의 경우에 공부가 하기 싫을 때 할 수 있는 일탈의 범위가 좁았다.

잘 놀줄도 몰랐고, 특별히 스트레스를 해소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책상에 앉아 공부 말고 딴청을 피우는 걸로 스트레스를 잠재웠던게 아닌가 싶다.


그 당시의 내 복잡한 마음은 그렇게 덮어진채로 특별히 끓어오르지고, 차갑게 식지도 않은 채 보온 상태였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은 혼자도 할 수 있는게 많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뭔가 기한 내에 빨리 업적을 보여줘야 할 압박감이 느껴지면

그런 스트레스는 최대한 디데이가 임박했을 때까지 미뤘다가 받자!!

대신, 그 전에 충분히 내가 하고싶은 것들로 시간을 가득채워보자 한다.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보통은 폭풍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다이나믹한 감정의 요동을 치다가

해가 가면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면서 감정들을 조금씩 정리해나갈텐데

나 같은 경우는 학생때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다가

지금 현장에서 상담 일을 하면서는 내 내면에 다양한 감정들이 있고, 그 감정들을 속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솔직하게 내 감정을 마주할 때 더 건강한 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몸도 마음도 성장했으나, 감정은 그 어느때보다 격하고, 어떤 미성숙한 아이들보다 다이나믹하다. ㅎㅎㅎ


자랑 아닌 자랑 ㅎㅎㅎ


무튼 가끔 청춘처럼 끓어오르는 그런 복잡함 심경들을 다독이기 위한 많은 방법들 중에

나는 자주 요리를 택한다.


요리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그 시간 내내 요리 말고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다.


심지어 칼을 쓴다! 슥슥 베어내버리는 그 위험한 칼을 들고 있으니 요리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보글보글 끓는 요리를 바라보면 눈도 귀도 즐겁다. 

감정도 끓어오르는 요리 따라 마구마구 끓어올랐다가, 한김 식히는 동안엔 같이 식어보고 시간이 흐르면서 요리에 간이 베어들면 감정도 농익었다가, 맛있게 먹어줄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이쁘게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감정도 잘 정리된다.


그리고 완성된 요리를 정갈하게 담아 비로소 식탁위에 이쁘게 차려내면, 잘 정리된 내 감정을 온전히 밖으로 꺼내어 해묵지 않게 볕에 탈탈 말려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요리를 하며 내 감정도 보글보글 끓여보는 시간.


그게 바로 오늘의 세번째 휘게 이야기이다.


마약계란장


시댁에서 아버님이 곱게 키운 닭들이 감사하게도 매일 알을 낳아준다.


아버님이 직접 주신 거라 그런지 더 소중하고 감사히 먹계되는 계란.

시댁에 놀러갔던 날 계란을 잔뜩 받아서 어떤 요리를 하면 알차게 잘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을 3~4일 했다.

그리고 논문 프로포절 신청 접수날이 다가오고 있고 급격하게 '배가 아픈것 같애' 라는 나의 스트레스 신호를 받아들이며 요리를 할 때가 왔나봐! 했다.



계란을 따뜻한 물에 반숙에서 완숙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삶아내주고

계란이 삶아지는 동안 양파, 파, 고추를 총총 썰어 준비했다.


서툰 칼질 덕분에 칼질을 하는 순간을 더욱 집중하게 된다. 손 말고 고추를 베어야지!! 하면서 ㅎㅎㅎ


계란 장조림을 만들때는 간장을 끓여사용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맛간장을 만들어서 냉장고에서 바로 숙성시킬거라 과정이 수월했다.


해보지 않은 음식을 할 때는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무슨 맛이 날까하는 궁금증이 더 커진다.


간장, 꿀, 맛술, 설탕, 다진마늘, 통깨, 다시마우린물까지 휘휘 잘 섞어서 만든 맛간장은

담날까지 계란을 농익게 만들어줄 마법의 소스가 된다.


생각보다 잘 까지지 않는 계란을 찬물에 손 호호 불어가며 씻어내며 껍질을 벗겨내면서

어휴 좀 더 잘 삶아보지, 나를 채근하면서 다른 스트레스를 잠시 잊는다.

인간은 새로운 스트레스로 앞의 스트레스를 잊기도 하는 법.





하루 잘 숙성된 마약 계란장을 이쁘게 담았다.


홍고추가 좀 있었더라면 더 알록달록 이뻤을텐데, 조금 아쉬운 마음은 다음 요리를 더 발전시킬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남은잡채로 김말이 튀김, 깻잎말이 튀김 만들기



시댁 할머님 생신잔치가 있던 그 즈음.


잔치라고 해도 코로나 때문에 다른 식구들이 다 모일 순 없고 어머님 아버님 할머님,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조촐하게 만나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큰 손 어머님은 할머님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라시던 잡채를 정말 20명은 거뜬히 먹을 정도의 양으로

요리를 하셨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질만큼 많은 음식들을 소화시키느라 잡채가 결국 많이 남았었다.




그래서 남은 잡채는 각자 집으로 좀 가져왔는데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게 요 잡채를 먹어볼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모두 내맘 같진 않아 역시. 하면서 인간관계란 무엇일까를 새삼 고민하며

요놈을 고온에 바글바글 튀겨버려야겠어. 하고 다짐했다.


아주 내 복잡한 마음도 사정없이 튀겨서 말려버리겠다는 굳센 다짐 ㅎㅎㅎ


처음에는 호기롭게 집에 있는 재료로만 김말이를 잘 만들어보려고

조미김에 돌돌 말아봤는데 조미김이 너무 작고 잘 부서져서 몇개 만들어보다가

더 안전한게 필요해! 해서 찾은게 아직 팔팔하게 생기를 가지고 있던 깻잎이었다.


어머님이 곱게 만들어주신 오색 야채 들어간 잡채 이쁘게 돌돌 말아서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튀김가루 풀어 퐁당

그리고 보글보글을 지나 바글바글 끓고 있는 기름에 퐁당 ㅎㅎㅎㅎ


그 튀김 튀겨지는 ASMR 소리란.


아는 맛이 무섭다, 아는 소리가 무섭다. 일맥상통.





전도 좋아하지만 튀김도 좋아하는구나 우리 오빠.

내가 좋아하는 접시에 이쁘게 옮겨담아

야무지게 챙겨먹는 우리 오빠 보면서


나의 남편의 새로운 식성을 알아가는 재미도 맛본다. ㅎㅎㅎ


보글보글 애호박찌개


나는 먹어본 적 없지만

많이 들어봤던 애호박찌개.


어느날 유투브 영상을 보다가 마지님 영상에서 안산선수가 그렇게 먹고싶어했다던 애호박찌개

먹어본 사람이 맛을 잘 낼 줄 알텐데

나는 상상 속의 맛을 실현해 내려니 사실 조금 막연하긴 했다.


얼려두었던 목살을 꺼내 다진마늘이랑 세차게 볶아주다가

다싯물 부어주고 보글보글


그 사이에 애호박을, 양파, 파, 고추, 버섯 총총 가지런하게 썰어주고

투하!


파랑 고추는 너무 일찍 넣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한소끔 끓이고 나서 마지막에

그리고 간은 칼칼한 고추가루와 간장 멸치액젓, 새우젓으로


우리는 푹 끓인 목살 김치찌개에 더 익숙하지만

양파와 애호박이 만나 달큰한 맛이 나던 애호박찌개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눈을 감고 기름이 끓는 소리가 아닌 육수가 끓는 소리를 들어봤다.

잔잔한 보글보글


파도가 일정한 속도로 밀려오며 내는 소리

물이 일정 온도에 다달아 끓어오르는 소리


마치 자연 속에서 듣는 것 같은 그 소리들에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감칠맛이 날 것 같은 음식의 향은 마음의 평온에 평화를 더한다.




오빠 오기만을 기다리며

딱 도착했을 때 정말 알맞은 온도로 담아내고 싶은게 바로 국. 이라는 반찬


너무 뜨거워도 맛을 오롯이 느끼기 힘들고

너무 식어버려도 재료들이 따로놀아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어려운 국이라는 반찬은

그 어느 반찬보다 심혈을 기울여서 시간을 재며 그릇에 옮겨 담는다.


그 신중함에 잠시 고민거리는 바닥으로 툭. 내려 놓을 수 있다.



마음이 한 요리들로 차린 한상


시작은 끓어오르는 내 마음 대신 다른걸 끓여보고자 시작한 요리인데

이렇게 한상 가득 차려놓고 보니 그 정갈함에 내 맘도 요리도 모두 온전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엄마가 만들어준 진짜 맛난 동치미도, 엄마의 그런 복잡한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우리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주는 그 과정에 엄마의 힘든 마음도 어느샌가 다 씻겨내려가고

우리가 맛난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해할 모습을 그리는 맘만 남았었기를 바랐다.




감정이라는 건 야속해서

불쑥 마음대로 만들어졌다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머무르다가

내 의도와 상관 없이 나를 들었다놨다 한다.



그 감정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그냥 나라는 존재에서 찾으려 하면 계속 우울하거나 분노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상황때문에 힘들었던건데 그 상황이 준 감정만 남아 나를 힘들게 할 수 있고

상대의 감정이 나에게로 넘어와 내가 다루지 않아도 되는 남의 감정까지 힘들게 어깨에 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나라는 재료가 맛있는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이루는 속재료들이 건강해야 한다.


각자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유통기한이 지나 썩어가고 있는 재료는 없는지, 또 나에게 알맞지 않은 재료는 없는지 충분히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선별해내고, 밖으로 꺼내어 마주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내가 될 수있다.


건강한 내가 없이는 사랑도, 사랑하는 상대도 있을 수가 없으니까.


오늘도 건강한 음식을 만들면서, 그리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우선 나도 맘과 몸이 모두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다짐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지.


오늘의 이야기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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