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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Jul 19. 2022

4. 신촌 데이트의 추억을 싣고

네번째 휘게이야기


인연이란 예측할 수 없게 다가온다.


오빠와 나의 인연도, 친구의 제안으로 나갔던 모임에서 첫 단추를 꿰었다. 둘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서울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 는데, 우연이 서너번 정도 겹치면서 이건 인연인가라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의문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오빠도 나도 주로 활동하는 곳이 신촌이었던지라, 신촌, 홍대, 이대 쪽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었는데 특히 신촌에서 보는 날이 많았다. 내 직장과 자취방이 있던 곳에서 시간을 편하게 보내주려고 했던 오빠의 작은 배려였음을 이젠 안다. 본인은 막차 시간에 늦어서 매일 저녁 달리더라도, 나는 최대한 오래 보고, 최대한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주려했던 오빠의 따뜻한 마음이었음을.



서울에 고작 2년여 정도 살았지만, 꽉채워 모두 오빠와 보낸 시간들이라 서울을 떠올리면 장소 곳곳에 오빠와의 추억이 너무 많다.


신촌은 골목 구석구석, 학교 돌담길, 옥상 벤치 이런 곳을 떠올리기만해도 시간이 정지한 것 처럼 그날의 날씨, 분위기, 색감까지 다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오늘 남기려는 휘게 이야기는 신촌의 작은 한 식당에서 데이트를 했던 그 추억을 담은 이야기이다.


비록 찾아보니 그 자리의 그 식당이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의 우리 청춘이 활활 타오르던 그 날의 시간을 빌려와 추억 밥상을 차린, 주말의 이야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혹시, 기억하는 사람 있으려나


신촌에 알쌈꼬꼬라는 가게가 있었다.

조금 선선한 여름이었고, 나는 하트무늬가 있는 와인색 셔츠에 흰색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미 어스름이 좀 내린 저녁이었는데, 오빠가 맛집을 찾아뒀다면서 알쌈꼬꼬로 데리고 갔었다.


입은 옷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오빠가 그날 내가 화장실 간다고 잠깐 일어서는데

오늘 입은 옷이 너랑 너어무 잘 어울린다고 했던 그 말 한마디에 혼자 또 심장이 두근두근 해서

그날 입은 옷을 무려 8년째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네....ㅎㅎㅎ




그 때까지만 해도 사실 깻잎 이런 향긋한 풀내음이 나는 채소들을 나는 초록색 풀떼기로 취급하며 먹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내 속도 모르고 오빠는 여기 진짜 맛있대~ 하면서 데리고 갔었다. ㅎㅎㅎㅎ



우리 기억 속 알쌈꼬꼬의 메인 메뉴는

낙지가 들어간 닭갈비였는데,

우리는 낙지 대신 제철 쭈꾸미로 매콤하게 볶아낸 메인요리를 우선 만들었다.


식감 좋은 팽이버섯도 잔뜩 넣고, 이쁜 색감의 파도 총총








매콤한 음식들과

고소한 음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던 그 기억을 더듬어

우리도 날치알과, 마요네즈, 그리고 매콤함을 달래줄 몇가지 사이드 음식을 차렸다.



그 날은 오빠가 이렇게 싸먹는거야~ 하면서 시범을 보여주고 아~ 해보라고 하면서

쪼꼬만 쌈을 만들어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우와 너무 맛있겠다 하면서 함냐함냐 자기 입으로 먼저 쏙

하고 본인도 뜨끔했겠지만 나도 네이놈 하고 호통을 쳤다.


내 입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네이놈.ㅎㅎㅎㅎㅎ





알쌈꼬꼬에도 이 반찬이 나왔었는지는 확실하진 않은데

매콤한 메뉴가 있다보니 상큼하고 아삭한 콩나물 무침은 꼭 있었으면 해서

쭈꾸미 볶음 만들면서 후딱 데쳐서 무쳐낸 콩나물 무침.



왠지 매콤한거 먹을 때 당긴단 말이지.




23살의 나와는 다르게

나는 이제 깻잎을 먼저 찾는 어른이되었다.


듬직하기만 했던 우리 오빠는

애교가 부쩍 많아진 귀여운 아저씨가 되었다.


나한테 호통을 듣고 두번째 쌈은 오빠가 만들어줬는데

깻잎위에 무쌈하나 올리고, 김도 하나 올리고, 날치알에 마요네즈 그리고 닭갈비랑 쭈꾸미까지 올려서 이쁘게 쌈으로 싸 입에 넣어주면 온갖 향과 맛이 어우러져 입에서 축제의 장이 열린다.



그리고 조금 목이 막히나? 할 때 한 입 딱 마셔주면 좋을 음식





바로 미역냉국이다.


이날 각각의 음식들도 너무 맛있게 잘 되었지만

무엇보다 음식들의 조화가 너무 좋아서

둘다 한 입 먹으면서 계속 끄덕끄덕 했다.



데이트할 때는 이렇게 사실 입에 잘 묻을 것 같고

입도 크게 벌려야 하고, 이에 뭐가 끼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크게 웃지도 못할 이런 음식이 반갑지 않았을수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게 다 추억이었음을.



그리고 지금에서야 들어보면 오빠가 메뉴를 선정하는 1번 기준은

나를 든든히 잘 먹이는거였다고 했다.



고향과 먼 타지에서, 우리 부모님만큼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던 연인이 있었음에

그 인연에 다시 한 번 고맙고, 또 감동한다.





사실 수련을 하러 올라간 먼 길에서

데이트하며 시간을 보내도 되나 하는 일말의 죄책감이 있던 터라

행복을 지연시키곤 했는데


오빠가 이끌어준 시간들은 내 의지대로 행복을 지연시킬수가 없게끔 

정말 매 순간 행복으로만 가득채워졌었다.


복잡한 걱정들은 다 날리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인지 깨닫게 해준 우리 오빠와의 추억이 가득한 신촌.


그래서인지 신촌은 수련으로 힘들었던 공간이기 보단,

수련기간을 무사히 잘 마치고 한 인간으로서도 감정적으로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해준 그런 공간으로 기억이 된다.





또 하나의 곁들임 메뉴는

달달한 오빠의 마음이 담긴 고구마치즈피자.



왠지 바보형제쭈꾸미 메뉴같기도 한 이 곁들임 메뉴는

오늘 차린 식사의 화룡점정이 된다.


황토고구마를 넣어 또띠아 위에 얇게 펴고 꿀을 발라 만든 오빠표 고구마 피자는

입안을 기분 좋은 달콤함으로 가득 채워줬다.





신촌에서의 첫 데이트도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루이다.



부끄럼이 많던 내가 데이트를 미루고, 또 미루자 오빠가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오늘은 볼 수 있어 없어? 나 제갈공명이야하고 최후통첩을 했는데 미안한 마음에 데이트를 더이상 미룰 수는 없었지만 하필 감기에 걸렸던 날이라 마스크를 끼고 나갔었다.


오빠는 첫 데이트에 가볼 법한 온갖 이쁜 가게들을 검색해두었지만, 마스크를 끼고 나온 내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해서 바로 미역국을 파는 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파스타 먹으려나 하며 아픈건 둘째치고 철딱서니 없이 헤헤거리고 있다가

왠 미역국이지? 하면서도 또 나의 최애 한식 메뉴인 미역국에 홀딱 반해서

이 남자 데이트 스타일 참 독특하네 하고 웃었었다.



나중에 한참 후에야 오빠가 감기걸린 나를 불러낸게 미안하고, 빨리 나았으면 하는 바람에

집밥 같은 밥을 사주고 싶어서 데려간거라는 걸 듣고


또 한번 감동.





 




이번에 이렇게 추억을 되새기면서 정성들여 차려낸 우리 밥상은

한 쌈 한 쌈 싸먹으면서 그 때의 추억도 하나씩 다시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타임머신이 되어주었다.



비내리던 신촌에서 같이 봤던 예쁜 무지개.


바빠서 얼굴을 보지 못하려나 했던 야근을 마치고 나오던 늦은 저녁

지금 마쳐서 나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으로 가던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편 신촌행 지하철에 급히 몸을 싣고 달려왔던 오빠의 모습



캔들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며 우연히 흥얼거리 노래가 입밖으로 나왔는데

동시에 같은 노래를 불렀던 그날.



수없이 많은 추억들이 잊혀지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떠다니고 있다.



그 때의 수줍던 우리가

이젠 둘도 없는 가족이 되어 가끔 그 때의 우리를 떠올려본다.



연애경험이 많지 않던 내가

사랑의 상처가 무엇인지 경험해볼 틈도 없이 너무 다정스런 오빠를 만나

한 평생 이렇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오늘도 오빠의 웃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빵 터지며,


그 때 신촌에 마스크를 끼고서라도 오빠를 만나러 가지 않았으면 나의 10년 후는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가끔 생각해본다.



몇번의 우연으로 맺어진 인연이 평생의 연인이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피곤한 하루의 끝에 맛있는 추억의 음식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눠 먹을 수 있음에 또 행복했던 주말.



오랜만에 우리 데이트 하던 시절이 떠올라서


떨리고, 기뻤어.


다시 한 번 나를 만나고, 결혼해줘서 고마워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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