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여주인공인줄 알았다.

20대) 26살

by 라미

"3년만 더 있다가 하면 안 되겠나?"


잠깐 말문이 막혀버렸다.

화가 난 것도, 서운한 것도 아니고 정말 문자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요청하면 뭐든 OK였으면서..

이제 와서 3년을 기다리라고?


"어.. 왜 3년인데? 3년 뒤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똑같을걸?"

"고작 26살인데 너무 어리고, 해볼 게 얼마나 많은데! K는 더 살아봤으니까 좀 기다려줄 수도 있잖아~ 그렇지?"


말문이 막힌 감정이 뭔지 곱씹어보기도 전에

갑자기 짜증이 막 솟구쳤다.

고작 나이가 어려서라고?


"아. 어머니 제가 나이가 이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데, 언제까지 더 기다릴 수가 없어요. 하하! 이제 원룸에서 나와서 결혼도 하고 번듯하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 부모님이 지금 반대하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고작 설득한다는 한마디가 원룸을 나와서 번듯하게 살고 싶어서라니!

적어도 잘해줄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거 같다 그런 쌍팔년도부터 고전적으로 내려오는 결혼설득 멘트정도는 해줘야 성의가 있어 보일 텐데..

같이 옆에 앉은 내가 다 고개가 떨어지는 소리를 하다니!


"아니 왜! 내 결혼인데! 3년 기다렸다 하는 거랑 지금 하는 거랑 무슨 차인데! 나 갈래!"


누가 양 옆에서 내 머리를 뜯고 있는 것처럼 머리가 조일 듯이 아팠다.

나에겐 대부분 OK 이만 하는 부모님의 반대도,

이런 어렵고 쑥쑥 한 자리에서 한다는 말에 무게감이라곤 하나도 없는 K의 태도도 다 머리가 아파서 결국 이 집에서 자라면서 특기로 가졌던 냅다 소리 지르고 일어나기를 시전 하면서 나왔다.


"너는 혼자 아파트에선 못살겠어? 그래서 나랑 결혼해? 원룸이 싫어서?"


눈에 힘을 있는 대로 주고 K에게도 몰아붙였다.

'아니..'라고 운을 떼며 뭐라 말한 것도 같은데 들리지가 않았다.

타고 온 차가 K의 차라 돌아갈 때도 같이 타고는 갔지만, 밤공기처럼 차갑고 서늘한 침묵이 차 안을 더 춥게 만들었던 거 같다.


"애들이 한잔 하자는데 같이 가자. 이미 오늘 일은 끝난 거고. 천천히 해결해 보자. 응?"

",,,,,알았어."


일단 이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계속 날을 세우기도 싫어서 긍정의 답을 말하곤 깜깜한 창 밖만 내다보았다.

네온사인이 비출 때마다 차 창문에 나의 실루엣이 언뜻 보였다.

핸드폰에 얼룩 지는 게 싫어서 수시로 옷으로 핸드폰을 닦아대는데

엄지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만 문질러댔다.


아마 다시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3년은 좀 그렇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아까보다 나은 어투로.

하지만 핸드폰 화면만 문질러댈 뿐이고,

내 생각을 정리해야 한단 사실도 모른 체 나는 그렇게 소주잔이나 꺾으러 갔다.


그때 잠깐 내 생각을 정리했었더라면,


이게 맞나? 한번 더 물었더라면,


나는 좀 덜 바보같이 나이를 먹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