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여주인공인줄 알았다.

20대) 26살._2

by 라미

"직장 있고 부모 있고 친구도 다 있잖아? 이게 안정적인 거야."


어쩔 땐 투닥거리는 정도였고, 또 어쩔 땐 악다구니를 쓰며 K와 싸우는 모습을 모두 다 지켜본 10년 지기 Y는 내가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결혼한다는 말에 이런 답을 해주었다.


그래. 그렇지.

이미 나 혼자 못하는 게 없는데..

나 혼자 사는데 내가 못 이룬 게 없는데..

이게 안정적인 거지.

나도 아는 걸 말해주는 Y에게 나는 딱히 반박할 말도, Y가 고개를 끄덕일 만큼의 그럴싸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들 빠르다고 한다.

그리고 다들 너무 아깝다고 했다.

26살에 결혼을 하는 게.

문득 나도 이 결혼은 맞는 걸까?

3년이 아니라, 3개월만 좀 기다려보면 내가 다른 결정을 내릴까?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쭉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선택을 물리지 않을 거란 걸.


"아 다 됐고. 그 새끼랑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데?"


혼란스럽고도 평탄한 일상이 지속되면서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

그리고 나는 10 통도 넘게 걸려오는 K의 전화를 계속해서 받지 않았다.

내 가방에서 쉬지도 않는 진동이 느껴졌지만

이상하게 전화를 받기가 싫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 선생님한테 다른 마음을 가질 리가 없잖아. 나도 취향이란 게 있는데.

그냥 네가 싫어할 거 알면서 그랬어."


"좀 다르게 말하고 싶었는데, 이대로 헤어지는 게 좋겠어. 계약한 거 위약금은 다 반반하자."


내뱉고 나면 가슴이 아플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덤덤했다.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 잔 걱정이 취미인 사람인데 그 순간만큼은 생각도 안 들었다

내 입도, 내 마음도 다 닫혀서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미안해. 이제 화도 안 내고 네 말 먼저 차분하게 들을게. 나 다시 생각해 보니까 너랑은 못 헤어지겠어.>


Y랑 같이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잔치국수를 먹고 1시가 다되어 집에 들어왔을 때

이 문자를 보고도, 나는 그대로 느껴지는 게 없었다.


<하루도 못 갈 마음이면서 그렇게 쉽게 내뱉네. 네가 싫어할 거 알면서도 이런 짓 하는 나도 그렇고 쉽게 말하는 너도 그렇고.. 우리는 이게 끝인 거 같아.>


화장을 지우고, 양치를 하고 세수도 하고..

결혼까지 이야기했던 남자랑 헤어지는데 나는 TV에서 숱하게 봤던 이별하는 여자들처럼

울지도, 멍하니 앉아있지도, 창밖을 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게 답인가 보다 했다.


왜 26살에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안정적이고 싶어서 결혼한단 내 말에 그게 이유가 되냐는 물음에,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내 모습이

그간 들었던 내 결혼에 대한 질문의 답인 거 같았다.


그냥 눈 감고 자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다 눈감고 자 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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