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여주인공인줄 알았다.

20대) 26살._3

by 라미

"너도 나중엔 잘했다 싶을걸?"


사흘이 멀다 하고 집 앞에 찾아오는 K에게 내가 결국 내뱉은 말이었다.

모른 체하고 지나치려면 손목을 한번 잡았다가

뿌리치면 그대로 놔주는 K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픈가?

안타까운가?

아니면 꼬숩다 싶은가?


아니었다.


한 삼일만 더 K가 날 붙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면 앞으로 너와 함께 가다가 마주치는 풍파는 오늘을 기억하며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아

사실은 네가 그토록 잡고 싶어 했던 나라고

네가 나를 그렇게 잡아 준 적이 있으니

이번엔 내가 너를 잡아주겠노라고.

뭐든 용서하겠다고.

그러니까 삼일만 더 나를 찾아와 줘.


[아.. A 씨 잘 지냈죠? K형님이 많이 취해서 그런데 집 앞에 잠깐 내려와 줄 수 있어요?]


공유와 김고은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다가 받은 전화의 발신인은 K의 직장후배였다.

같은 직장에서 만났다가 연인이 되었고,

나는 애초에 전공이 회사와 관련이 없는 데다 계약직이어서 K와 연인이 되면서 전공을 살려 이직을 했었더랬다.

그런데 연인이 되고 이직을 하는 동안 K와 내가 연인인 건 내가 알기론 비밀이었다.


"우리 이제 결혼하니까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말한 거야. 나 그전까진 진짜 한 번도 말한 적 없다니까?"


다음날 정신을 차린 K에게 왜 상의도 없이 나와 연인인걸 밝혔냐 물으니 답을 해주었다.

그래 맞는 말이다.

결혼을 하기로 했고 이미 양가 어른 다 만난 사이인데 직장 동료는 왜 못 만나?

사실 이렇게까지 목소리를 깔고 추궁할 문제는 아닌 거 같았지만, 이상하게 불편한 마음에 K가 눈을 뜨자마자 추궁을 했었더랬다.


그 후로도 다정하고 부드러운 언어를 쓰면서 서로를 대했지만, 살짝 스치는 정도는 허용해도 힘을 주면 결국 다치고야 마는 무뎌진 부엌칼처럼

어색하고도 예민한 기분으로 웨딩사진까지 모두 찍었다.


우린 화해했으니까

결국 나도 K를 좋아하니까, 아니 결혼까지 하고 싶으니까

이게 맞지!라고 생각하며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네? 그날은 신행에서 돌아오는 날이라 출근 시간에 맞추기도 어렵고 미리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K의 고향과 결혼식이 진행되는 지역이 다소 멀어서 결혼식 전 날 K의 고향친구들이 내려왔다해서 인사차 들린 삼겹살집에서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신행에서 돌아오는 날 곧바로 출근을 하란 전화였다.

사실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데다 아무리 결혼예정인 사실을 오픈했어도_

결혼 직전의 여자와 갓 결혼한 여자

그리고 청소년기 이전의 자녀가 있는 여자는

고용주 입장에서 달갑지 않다는 거

아마 남에 돈 10원이라도 벌어 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아.. 그래도 오라면 가야지 뭐. 그래도 우리 A가 능력이 되니까 결혼하는데 이직도 하고! 나는 진짜 이제 바랄 게 없다."

"바랬던 건 뭔데?"

"아니 솔직히 부모님한테는 계약직이라고 소개해 주는 것보단 어디든 정규직이 좋지. 게다가 전공도 살려갔고 연봉도 전공 살리는 일 중에 제일 좋잖아!"


아.

나는 존중이 사랑이구나.


나 말고도 그 직장에서 계약직인데도 결혼을 한 여자가 숱했던 거 같은데

그 여자들도 이런 말을 들었을까?

첫 직장이 힘들어 회피형으로 택한 계약직 회사에서 만난 K인데,

넌 내가 이전에도 지금도 정규직인건 아니?


고소하고 기름진 삼겹살 냄새도

어린 데다 척척 정규직 일자리도 잘 구하는 날

추켜세우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맞장구치는 K도

다 눈에 들어오지도 들리지도 않고


그저 몇 년간의 사회생활에서 배운

적당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내가 끝까지 계약직 자리 남겠다 했으면?'

'그래서 내가 이직 실패했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했다.

안정적인 건 네 지금 모습 그대로라는 Y와,

3년만 기다리라는 엄마와,

너는 좋아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결혼하려고 좋아하는 거 같단 또 다른 내 친구 L


나는 결혼이 내 허기를 달래줄 거 같았어

그런데 결혼에 필요한 건 사랑이긴 해.

나에게 사랑은 존중이야.

그런데 계약직과 정규직의 차이로 내 사랑의 존재유무가 판가름 나고

그럼에도 나는 이 결혼을 무르지 않을 인간이란 걸 잘 아니까


출산은

내가 가장 힘없고 약해지는 일이겠어.

애를 낳는 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야.


그것만이라도_

그렇게 되는 일만은

안 할 수 있겠지?

그건 아직 내 선택이니까.


그렇게 식장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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