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여주인공인 줄 알았다.

30대)30._3

by 라미

알바가 아니라 정직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은

'나는 9to6는 하지 않겠다.'였다.

갑자기 이 맥락에서 뜬금없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의 시작 지점과

성인이 되기 직전의 기억에서 나는 부모님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만큼은

내가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좋은 것만 해주고 싶었다.


돈은 대략 100만원 언저리만 벌어도 좋을 것 같았고 보통 어린이집 아이들이 4시쯤 하원을 하니 그 쯤에 나도 아이를 하원 했으면 싶었다.

이 생각 끝에 나는 보육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학창시절 부모님과 친하지 않고, 나 혼자 적지만 오래 벌어서 살 수 있는 직업을 원해서

무엇을 할 지 고민하다가 고령화 시대에 맞춰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실습과 봉사의 끝에 복수전공을 하여 유아들을 가르칠 수 있는 보육교사 자격을 따로 취득했다.


지난날의 결심이 선택지가 많지 않은 그 당시 나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어 줄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 시절, 뭐라도 했었던 내가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결심이 서고 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최대한 집 근처 그리고 아는 동네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가급적이면 종일반 교사가 아닌

보조교사 자리나 투 담임 자리로 업무 부담이 적은 자리를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4대 보험이 되는 정직원으로!

100만원 보다 훨씬 더 버는 자리로!

취업 할 수 있었다.


경력 단절 후 첫 정규직 직장은 0세반 아기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난지 좀 되어서 어떤지 모르곘지만 내가 일 할 때 까지만 해도

담임 한명 당 아기들은 3명으로 정해졌었다.

내 아이들을 돌보는 마음으로 이 아이들을 돌보면, 내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사랑을 받을 것이라

마음 먹고 담임으로써, 그리고 엄마로써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 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 중 두 명은 이란썽 쌍둥이 남매로 처음 만났을 땐 괜시리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얼마나 날래고 호기심이 많은지 크고 작게 여기저기 '콩콩' 부딪히기 일쑤였다.


나 혼자 둘은 본 경험이 있어도 셋을 본 경험이 없기에, 게다가 몇년간의 경력단절을 겪고 돌아 온 현장이었기에, 그 시절 나에 대한 항변을 좀 해본다면 마음과 다르게 눈과 손이 조금 더뎌

어디선가 쌍둥이 남매가 '콩콩'하고 부딪힐 때면 나의 마음은 '쿵쿵'하고 내려 앉아만 갔었다.


"네. 어머니 우리 자주 통화하지요?"


지금도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아이에게 아주 작은 이슈만 생겨도 꼭 부모님과 통화를 해야 했는데 0세반 담임으로 부임 하자마자 거의 3일에 한번 꼴로 요 쌍둥이 남매 어머님과 통화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선배 선생님들도 바쁜 와중에 오며가며 우리 반을 꼭 한번씩 체크 해주기 바빴고

원장님은 거의 오전에 나와 함께 지내시기에 이르렀다.


"나.. 일을 하면 안되나봐.."


내가 미혼 선생님이라면 또 달랐을까?

경력단절이 없었다면 이거보다 잘 했을까?

내 아이는 선생님의 손길을 거쳐 등원 할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예쁘고 기분 좋게 하원을 하는데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은 크고 작게 꼭 이슈가 생기니 마음이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자격이 없는 것만 같았고 이 아이들이 조금 더 경력이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콩콩' 부딪히지 않고 '콩콩' 뛰어 다니며 더 재밌게 하루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엄마의 마음으로 너무나 미안했었다.


이런 마음이 쌓이고 쌓여 정규직 출근 한달 만에 나는 퇴근 하고 돌아 온 k가 윗 옷을 벗기도 전에

한 참을 붙잡고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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