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수 Sep 05. 2022

선(善)하게 사는 법_天道無親 常與善人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사마천 이야기

사마천의 <사기열전>

나는 동양고전 중에서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너무나 심오한 내용의 <도덕경>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어려운 도덕경의 내용을 <사기> 속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좀 더 실제적으로 이해해 보고, 더 나아가 지금 우리 삶도 통찰해보는 힘들지만 재미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마천 또한 <사기> 곳곳에 도덕경의 어떤 구절을 인용해서 어떤 인물을 평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사기열전>>의 첫 장인 <<백이열전>> 부분에서 백이숙제 인물의 이야기를 전하며 사마천은 “천도무친 상여선인(天道無親 常與善人)이라는 도덕경 79장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하늘의 도는 선한 사람과 늘 함께 한다”는 말이다. 당연하고 맞는 말이지만, 사마천이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의문을 제기하기 위함이다. 그는 ‘선한 사람이 곤경에 빠지는 것이 과연 하늘의 도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걸까?       


백이숙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로 은나라 탕왕 때 제후국 군주의 두 아들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우인 숙제에게 왕위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우 숙제는 왕위를 형에게 양보하려 했다. 그러자 형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이라면서 달아나버렸고, 숙제도 달아나버렸다. 참으로 욕심 없는 의로운 형제이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다른 아들이 왕으로 세워졌다. 그리고 이들은 은나라를 떠나 주나라 문왕에게 몸을 의탁하려 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나라에 이르렀을 때 문왕은 죽고, 그의 아들 무왕이 아버지 위패를 수레에 싣고 부패한 은나라 주왕(폭군)을 치려고 했다. 이에 백이숙제는 주 무왕에게 간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신하 신분으로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주 무왕 신하들이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하자 태공 여상이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라며 다행히 말렸다고 한다. 그 뒤 주 무왕이 은나라를 평정하자,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주나라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굶주림에 노래를 부르다 죽은 것이다.        


이렇게 백이숙제는 의로움을 지키고자 했지만, ‘왜 굶어 죽어야 했는가?’, ‘무엇이 하늘의 도인가?’ 라고 사마천은 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마천 그 또한 한나라 무제 때 신하로서 소신과 의리로 말을 했지만, 억울하게 궁형을 받고 치욕스럽게 살게 된 것에 대해 자기 스스로도 답답해하고 있음이다. 그도 소임을 다하며 조심하며 의롭게 살았는데, 왜 재앙이 자신에게 닥쳤는지 억울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백이숙제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리라. 아래 사마천의 글을 보면 느낄 수 있다.  

    

“한 걸음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도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며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런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p.78 <사기열전> 김원중)      


나는 사마천의 생각에 공감한다. 왜냐하면 과거나 지금이나 세상은 탐욕스럽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이다. 반면에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은 늘 가난하고 억울함을 참고 살아가고 말이다. 따라서 과연 하늘의 도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하늘의 도가 있다면 왜 이 세상은 이렇게 억울하고 원망할 일이 많은지 나도 사실  묻고 싶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늘이 돕는 사람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나도 많이 궁금하다. 이런 삶의 물음에 대해 아래 사마천은 결국 이런 선택을 했다. 아래 그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백이와 숙제도 비록 어질었어도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 명성이 드러났다.
이와 같은 숨어 사는 선비들이 묻혀 거론되지 않는 것이 나는 슬프다.
지고한 선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p.80 <사기열전> 김원중)  


그는 계속 세상을 계속 원망만 하며 살지 않았다. 대신 치열하게 시대를 살았던 여러 인물들을 찾아 후세에게 전하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즉 그는 결코 원망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동양고전의 백미인 <사기>를 완성했고, 동양 최고의 역사가이자 인문학자로 우리 곁에 있다.      


사마천도 원망하는 마음에 삶을 의문하기도 했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하늘의 도가 함께 하는 선한 사람이 된 것이다. 즉,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신의 소임을 다함으로 해서 세상에 선함을 이루었고, 비로소 하늘의 도가 그와 함께 한 것임을 깨닫는다.          


화대원 필유여원 안하이위선(和大怨 必有餘怨 安何以爲善)
큰 원한은 화해한다해도 원망이 남아 있기 마련이니 어찌 선하다 할 수 있겠는가?     

천도무친 상여선인(天道無親 常如善人)     
하늘의 도는 친함이 없고 늘 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

(노자 도덕경 79장)      
              
진흙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연꽃 (서천국립생태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